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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052
한자 佛敎
영어공식명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현주

[정의]

부처를 교조로 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개설]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a)라는 역사적 인물이 깨달은 우주와 삶의 진리를 궁극적 가치를 지닌 가르침으로 믿고 실천하는 종교로,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불교 고유의 용어로 표현하면 교조인 부처[불(佛)], 그의 가르침인 법(法, dharma), 그리고 그를 따르는 공동체인 승가[승(僧)]라는 삼보(三寶)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6~5세기경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는 범아시아 종교로서 지금까지 2500여년 동안 초기불교(初期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 등의 형태로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전개해왔다.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인 4세기 후반이다.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 공인)의 순으로 수용되었다. 불교는 육로 또는 해로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와 한국의 문화적, 지역적 특성과 결합하면서 한국불교의 독특한 성격을 형성해왔다.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는 한국이 중국 문화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는 중국의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유교, 도교와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형성해왔다. 특히 불교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을 원리로 한 선악(善惡)의 도덕률, 극락과 지옥의 이원적 내세관을 한국인에게 선사했다.

[내용]

오늘날 성남지역의 불교사는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크게 삼국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근대와 현대의 불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불교가 처음 전래될 당시 성남지역은 백제 유역에 속해 있었다. 기원을 전후하여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溫祚)의 유이민 집단은 한강 유역과 성남지역에 이른바 백제의 한성시대(漢城時代)를 열었다.

「권제3 흥법(興法) 난타벽제조(難陁闢濟條)」, 『삼국유사』와 「백제본기 제2 침류왕조(枕流王條)」, 『삼국사기』에는 침류왕 원년(384년)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되었고, 그 이듬해에 지금의 성남 혹은 광주로 추정되는 한산(漢山)에 백제 불교 최초의 사찰이 창건되고 열 명의 승려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삼국시대의 성남지역은 백제 불교보급의 근원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불교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료의 결핍으로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지역 불교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파악되는 것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가능하다. 고려시대에 성남지역의 불교는 왕실의 불교신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태조는 불교를 장려하여 개경 부근에 많은 사탑이 건립되었으며, 경기도 일대에도 왕실의 원찰(願刹) 들이 다수 창건되었다. 현 성남지역 소재의 망경암(望京庵)은 그 창건연대가 고려 말로 추정되는 작은 사암인데, 바로 이러한 고려 왕실과 불교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말의 「망경암칠성대중수비문(望京庵七星臺重修碑文)」[1898년 건립]에 따르면 고려 말, 조선 초에 역대 임금들은 이곳에 찾아와 나라와 백성의 안락과 수복(壽福)을 빌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아들 평원대군(平原大君)[1427~1445]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1466~152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암자에 칠성단(七星壇)을 세우고 칠성제(七星齊)를 지냈다고 한다. 망경암이라 부른 이유는 이 암자에서 서울을 바라보고 대궐을 생각하며 임금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망경암은 여말선초 왕실의 불교신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찰이었다. 망경암 외에도 그 역사가 여말선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사찰로 봉국사(奉國寺)가 있다.

봉국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인데,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창건되어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중수한 절이다. 봉국사라는 이름은 조선 현종 때인 1674년(조선 현종 15) 요절한 현종의 두 공주 명선(明善)명혜(明慧)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비의 원으로 중창한 이후 붙여진 것이다. 이와 같이 봉국사도 왕실의 원찰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성남지역의 불교를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남한산성의 축조와 관계된 승군(僧軍)의 활약을 통해서이다. 조선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1624년(인조 2) 승려 각성(覺性)[1575~1660]을 승군대장인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고, 남한산성의 축성작업과 팔도승군 모집의 임무를 맡겼다. 성이 완성된 후 인조는 남한산성 축성의 공로로 각성에게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도첩(度牒 : 승려의 신분증명서)을 내렸다. 이때 남한산성의 축조와 건물 설립, 그리고 산성의 수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승군이 동원되었다고 하며, 이들은 아침 저녁으로 예불 및 간경(看經)을 하며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고, 낮에는 군모(軍帽)를 쓰고 훈련을 받으면서 유사시를 대비했다고 한다. 또 성을 따라 돌다보면 곳곳에서 절을 만나 마치 남한산성 전체가 도량인 듯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남지역의 불교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나라가 어려울 때에는 호국불교의 중심 도량으로서 기능해왔다. 이것은 구한말 왕실의 후손인 이규승(李奎承)망경암에 마애상(磨崖像)을 건립하고 망경암칠성대를 중수하면서 대한제국황실의 번영을 기원한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황]

개항 후 서구의 근대문물과 기독교의 전파, 그리고 일본불교의 침투를 겪으며 성남의 불교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일제의 사찰령(寺刹令, 1911년 6월 반포)이 시행되면서 한국불교는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이라는 단일 종단 아래 30본산(本山) 체제가 되었다. 이때 당시 광주지역에 속했던 봉국사는 봉은사(奉恩寺)의 말사방등지(末寺傍等地)가 되었다가, 해방 후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1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 소속되어 있다. 현재 한국불교의 종단은 크게 조계종과 태고종으로 양분된 가운데 대략 70~80개의 신생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남지역 불교 사찰의 수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지만, 『한국불교총람』(1998)에 따르면 1998년 현재 성남시에는 17개 종단, 109개의 사찰이 있다. 이처럼 성남의 불교는 여러 종단들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또 그 가운데에서도 태고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봉국사망경암 등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조계종 사찰, 한국대승불교여래종의 총본산인 약사사(藥師寺)[1967년 설립], 또 2002년 완공된 도심형 사찰로서 성남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천태종 대광사(大光寺)[1997년 기공식, 2000년 사찰명 획득] 등을 고려할 때, 성남에는 하나의 종단이 지배적 위치에 있지 않고 여러 종단들이 경쟁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성남지역의 사찰들 가운데 근현대 이전의 사찰은 봉국사, 망경암이 있으며, 약사사(藥師寺)[1968년], 백련사(白蓮寺)[1975년 건립], 골안사(骨安寺) 등은 조선 후기 사찰인 남한산성의 정각사(正覺寺), 한흥사(漢興寺), 불곡사(佛谷寺)를 재건한 것이다. 나머지 사찰들은 대부분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들로, 1960년대 이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여 1970~1980년대에 들어 갑자기 그 수가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1973년 성남시가 광주군에서 분리하여 신도시로 탄생 된 이후 불교의 성장세는 기독교, 천주교의 성장세에 비해 위축된 면을 보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85년과 1995년의 인구센서스에서 1985년과 1995년 모두 성남시 불교인구는 개신교인구보다 적고, 1985년과 1995년 사이에 개신교와 천주교 인구가 증가한 반면 불교인구는 감소했다. 이것은 1991년 하나의 구로 독립한 분당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급격히 증가한 개신교 교회와 신도수와 비교할 때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서인지 오늘날 성남지역의 불교는 도심 포교당수의 증가와 더불어,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교화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전통적인 불공과 의식 위주의 불교에서 벗어나 일요법회의 운영, 사회복지사업과 지역봉사활동에의 참여, 환경연합 등 시민운동과의 연계 등 지역사회에 대한 구체적 봉사를 통해 현대 도시문화에 걸 맞는 종교로 거듭 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성남의 불교는 백제불교의 초전지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왕실의 불교신앙과 호국불교의 장소로서 기능해왔다. 현대에 와서는 도심포교, 사회복지사업, 지역봉사활동 등을 펼치며 성남지역의 종교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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