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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743
한자 望京庵磨崖如來坐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553-1[태평로55번길 7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송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조|불상
제작시기/일시 1897년(대한제국 광무 1)연표보기
제작지역 경기도
재질 석재
소장처 망경암
소장처 주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553-1[태평로55번길 72]지도보기
소유자 망경암
문화재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102호(성남시)
문화재 지정일 1980년 6월 2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소재 망경암에 있는 조선시대 마애불.

[개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망경암 우측의 자연 암벽 상단에 작은 장방형의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부조(浮彫)한 불상으로, 이 주위 14군데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서울이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임금이 친히 거동하여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한 장소이며, 세종의 일곱째 아들인 평원대군(平原大君)[1427~1445]과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齊安大君)[1466~152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칠성단(七星壇)을 세워 칠성재를 지내면서 칠성대(七星臺)라 불렀던 곳이다. 불상 주위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1897(광무 1년)에 이규승(李圭承)이 관음상을 새기고 절을 세웠다고 한다.

[형태]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뒤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음)의 좌상으로 양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입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머리는 민머리를 하고 있는데 얼굴 모습은 마모가 심하여 그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마애여래좌상 우측과 아래로는 암벽을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14곳에 얕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大皇帝陛下萬萬歲(대황제폐하만만세)’ 등의 명문을 새겨놓았다.

[특징]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조형미나 조각 기법이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선 후기 불상 중 하나이며, 또한 당시의 칠성 신앙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