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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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容夏處斷事件 |
이칭/별칭 | 도고면장 처단 의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8년 1월 - 대한광복회 회원들이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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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8년 1월 - 대한광복회 조직 발각으로 40여 명 체포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장두환|김한종|임세규|김경태|강석주|성문영|대한광복회 |
[정의]
1918년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의 회원들이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인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한 의열 투쟁.
[개설]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는 친일에 철저했고 악질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해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가 지목하여 사살하였다.
[역사적 배경]
대한광복회는 1915년 조직된 비밀결사 단체로 국내의 부호들로부터 의연금 모집, 일본인이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군자금 확보, 친일파 반역자 처단 등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1917년 11월 경상북도 칠곡에서 자산가 장승원(張承遠)이 대한광복회 회원들에 의해 피살되었고, 충청 지역 회원들은 5년째 면장 역할을 맡고 있으며 1913년~1914년 충청남도 내 우수 면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던 도고면장 박용하의 악행에 주목하였다.
[경과]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 책임자 장두환(張斗煥)은 예산 사람 김한종(金漢鍾)과 함께 대한광복회의 목적에 따라 1917년부터 충청 지역의 부호를 조사해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장두환과 김한종은 이 결과를 조직의 총사령관 박상진(朴尙鎭)에게 전달하였고, 대한광복회는 조사 대상자들에게 군자금 납부 고시문을 발송하였다. 그런데 박용하는 이를 헌병대에 밀고하는 한편, 면장의 지위를 악용해 부하 면서기를 수탈하는가 하면 전임 면장을 공금 낭비 등의 죄명으로 투옥시켜 옥사하게 하는 등 지탄을 많이 받았다.
김한종은 도고면장 박용하를 징벌하여 다른 부호들의 경각심을 높이기로 결심하였다. 1918년 1월 23일 영주 출신 임세규(林世圭)와 청양 출신 김경태(金敬泰)를 만나 권총 두 자루를 건넸다. 임세규와 김경태는 아산군 송악면 동화리 강석주(姜奭周)의 집으로 가서 사형 선고문을 작성하고, 도고면 석당리의 성문영(成文永)의 집에서 박용하를 기다렸다. 그리고 박용하가 돌아오자 곧바로 사형 선고문을 전달하고 사살하였다.
[결과]
박용하 처단 사건은 장승원의 처단과 함께 일제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민족 독립의 열망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오자 내부 밀고로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는 한편 4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의의와 평가]
박용하 처단 사건은 아산 지역의 독립운동에서 의병 운동과 3·1운동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엄혹한 통치 속에서도 민족 독립을 위해 추진된 의열 투쟁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