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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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倉鶴城 |
영어공식명칭 | Sinchanghak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신창읍성,학성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서정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신창학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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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5월 24일~11월 19일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신창학성 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신창학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학성산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산66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석축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530m[둘레]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 정상에 있는 고대 석축 산성.
[개설]
신창학성(新倉鶴城)은 학성산(鶴城山)[183m] 정상에 있는 석성(石城)[돌로 쌓은 성]으로, 출토 유물 등을 통해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립 경위]
신창학성의 축조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축성법과 성내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백제 때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통일신라 때 축조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도고면·선장면 일대를 관할하는 조선시대 기준 신창현(新昌縣)의 치소성(治所城)[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역할을 하는 성] 기능도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신창학성은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서쪽에 솟아 있는 학성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곡교천 건너 영인산성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을 제외하면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 동쪽·북쪽·서쪽의 세 방향 모두 조망이 매우 잘 되는 산성이다.
[형태]
신창학성은 산 정상부에서 산의 중턱에 걸쳐 돌로 쌓은 성이다. 산성을 크게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나누어 본다면, 신창학성은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뫼식에 가깝다. 그렇지만 서쪽 성벽은 산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동쪽 성벽은 산의 중턱쯤을 지나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산복식(山腹式) 혹은 사모봉형(紗帽峰形), 삼태기형 산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테뫼식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게 한 바퀴 둘러쌓은 산성을 말하며, 포곡식은 성곽 안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계곡을 감싸고 있는 성인데 규모가 테뫼식보다 크다.
신창학성의 전체 둘레는 530m에 이르며,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으로 가공한 성돌(城-)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은 곳곳이 붕괴되었지만 비교적 잔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과 건물지 등을 들 수 있다. 성문은 서문지와 북문지가 남아 있는데, 서문지는 평문식(平門式)이고, 북문지는 현문식(懸門式)이다. 평문식은 걸어서 출입이 가능한 문이고, 현문식은 사다리나 다른 장비를 사용하여 성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한 문이다. 조사된 건물지 중에는 창고로 추정되는 석벽 건물지도 있다.
[현황]
신창학성의 성벽은 이미 상당히 붕괴되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구간은 없다. 그러나 원래의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잔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특히 학성산의 중턱 정도를 지나는 동벽의 경우 3~4m 정도의 높이로 성벽이 남아 있어 이 구간에서 축성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성문은 서문지와 북문지가 남아 있다. 정비를 위해 두 성문이 모두 발굴 조사된 바 있다.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서 진행한 발굴 조사과정에서 건물지도 발견되었는데, 특히 서문지에서 안쪽으로 50m 정도 들어온 지점에서 창고로 알려진 석벽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창학성은 성벽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구간이 있어서 고대 산성의 축성법, 성돌 가공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관방유적이다. 아울러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신창읍성’으로 기록되었는데, 조선시대에 평지 읍성(邑城)이 축조되기 이전에는 산성의 형태로 읍성, 즉 치소성의 기능도 겸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 발견되는 석벽 건물의 존재는 치소성의 창고로 볼 수 있다.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는 내포(內浦) 지방에서 한반도 중심부로 이어지는 주요 육로가 통과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신창학성은 해상 및 수상 교통이 활발했던 아산만 안쪽의 곡교천과 삽교천 하류 일대가 잘 조망되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