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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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關防遺蹟 |
영어공식명칭 | Border Defense Cultural Relics in A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집필자 | 서정석 |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전통 시대에 축조한 군사적 목적의 시설.
[개설]
관방(關防)은 국경의 방비를 위해 설치한 군사적 목적의 시설물을 말한다. 성곽이나 봉수를 비롯하여 진(鎭)이나 영(營), 보(堡), 책(柵)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경 외에 해안의 요충지에 많이 설치되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관방조에는 충청도 지역 12개소도 기록되어 있는데, 서천부터 당진까지 모두 해안 지역의 진영이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관련 시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내륙에 설치된 성곽, 봉수 등도 관방 시설로 보고 있으며, 아산 지역의 관방 유적으로 성곽과 봉수를 들 수 있다. 성곽은 20개소가 알려져 있으며 석축(石築) 산성이 12곳, 토축(土築) 산성이 8곳이다. 봉수는 연암동산성의 연암산 봉수대가 있다. 연암동산성으로 봉수대가 옮겨지기 전에 연암서산성에 그보다 앞선 시기의 봉수대가 있었다.
[아산 지역의 산성]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산성은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비스듬히 아산 지역 전체를 가로지르는 곡교천 주변을 중심으로 그 북쪽에 13곳과 남쪽에 7곳의 산성이 있다. 지리·지형적으로 볼 때 아산 지역의 주요 방어선은 곡교천과 그 북쪽의 통칭 영인지맥이라 할 수 있다. 바다를 통한 침입에 대비하여 아산만과 이어진 곡교천 양안 주변에 산성을 많이 축조하였다. 육상 침입과 관련하여 영인지맥에도 산성이 축조되었는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영인지맥 중간에 있는 어르목고개를 ‘호우요해(湖右要害)’, 즉 충청남도 지역의 요충지라 하였다.
아산 지역의 산성은 ‘산성’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대부분 높이 160m에서 300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363.5m의 영인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영인산성은 아산 지역의 산성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벽의 둘레도 1,000m에 이르고 있어 규모도 가장 크다.
아산 지역의 산성 중 일부는 높이 100m 미만의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군덕리산성과 기산동산성은 산성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낮은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20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안말산성도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어 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평산성(平山城)이라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아산 지역의 산성 중에서 축성 시기가 정확히 확인되는 산성은 없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으로도 정확한 축성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지 않고 있다. 백제가 아산 지역에 산성을 축조하기 시작한 것은 백제 전기부터이다. 문헌 기록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산성은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 기록된 대두산성(大豆山城)이며 9년(온조왕 27)에 쌓았다. 이후 18년(온조왕 36)에 탕정성(湯井城)을 쌓았다. 대두산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물한산성[물앙산성, 수한산성]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고, 영인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탕정성은 주로 읍내동산성으로 보기는 하지만 배방산성으로 보는 학자도 있어서 축성 연대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밖의 산성은 정확한 축조 시기가 파악되지 않는다.
산성이 아닌 성 중에는 1391년(공양왕 3)에 조운(漕運)을 위한 조전성(漕轉城)으로 장포에 쌓은 당성(溏城)과 1631년(인조 9)에 공진창(貢津倉) 둘레에 쌓은 창성(倉城)의 축조 연대가 확인된다. 당성은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선장면 장곳리의 장포는 물가의 평지여서 성의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고, 위치나 입지 조건으로 볼 때 인근 선장면 군덕리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는 군덕리산성이 당성일 가능성이 있다. 군덕리산성은 바닷가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고, 평지에 가까운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어 조세미(租稅米)를 거두었다가 서울로 보내는 데 안성맞춤의 입지조건을 보이고 있다.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한 산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방어용 산성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928년(태조 11)에는 태조가 직접 탕정군(湯井郡)에 행차하기도 하였는데, 유금필(庾黔弼)에게 명하여 탕정군에 성을 축조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온양군 고적조(古跡條)에는 배방산고성(排芳山古城)이 유금필이 쌓은 산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산 지역의 봉수]
봉수와 관련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간단한 설명이 있다. "연암산(鷰巖山) 봉수는 남쪽으로는 천안군(天安郡) 대학산(大鶴山)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직산현(稷山縣) 망해산(望海山)과 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 『1872년 군현지도』「아산현」에는 백석포에 포수청(砲手廳)이 건물 그림과 함께 표기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그 이전 시기의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