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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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內里山城 |
영어공식명칭 | Seongnae-ri 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월주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
집필자 | 서정석 |
현 소재지 | 성내리산성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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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석축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41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에 있는 시기 미상의 석축 산성.
[개설]
성내리산성(城內里山城)은 ‘월주산성(月柱山城)’이라고도 하며 아산 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산성이다.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 월주산(月柱山)은 높이 190.5m로 그다지 높지 않으나, 주변 일대에 평야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높게 보인다.
[건립 경위]
성내리산성은 성벽 일부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축성 시기와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
성내리산성은 성내리 3리 마을 뒷산의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산성으로 아산 지역에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성이다. 성은 2㎞ 쯤 떨어진 고용산에서 동남쪽으로 발달한 지맥의 동남쪽 맨 끝단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에워싸면서 축조되었다. 산성 소재지 인근 주민들은 ‘월주산성’으로 부른다. 월주산 정상 서쪽 100여m 지점이 영인면과 음봉면, 둔포면이 만나는 지점이다. 서쪽 2㎞ 지점에 고용산(高聳山)이 있고, 남쪽 약 2㎞에는 동서 방향의 통칭 영인지맥 산줄기가 병풍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형태]
성내리산성은 월주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테뫼식 석축(石築) 산성이다. 테뫼식이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게 한 바퀴 둘러쌓은 산성을 말한다. 지형에 따라 대략 동서 방향으로 긴 타원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남쪽과 서쪽이 높고 북쪽과 동쪽이 낮은 편이다. 둘레는 410m이다.
성벽은 대부분이 완전히 붕괴되어 축성법을 알 수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 다만 북벽 쪽에 일부 성벽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성벽은 자연 할석(割石)[쪼갠 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허튼층쌓기란 불규칙한 돌을 사용하여 가로·세로줄눈이 일정하지 않게 흩뜨려 쌓는 방식이다.
성벽이 크게 붕괴된 관계로 성문 등 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도 찾아보기 어렵다. 성내에서는 건물지로 볼 만한 평탄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정상부에 장대(將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동쪽에 웅덩이 시설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곳에서 사방을 관찰하며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는 곳이다.
[현황]
성내리산성은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어 있으며, 특히 성의 절반 정도 되는 서쪽 지역에 사찰이 들어서면서 성벽은 자취를 찾기 어렵고 성내도 변형이 심한 편이다. 성내에서는 생선뼈무늬[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과 함께 회청색 경질토기(硬質土器) 조각, 분청사기 조각 등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성내리산성에서는 둔포면은 물론이고 안성천과 경기도 평택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남쪽으로는 전망이 좋지 못한 데 비해 북쪽으로는 멀리까지 조망된다는 점에서 북에서 남하하는 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과 성내에서 발견되는 토기 조각 등을 근거로 막연하게나마 백제시대부터 존속하여 조선시대까지도 일정 정도 기능을 유지하였던 산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