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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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道海運判官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길 67[공세리 193-1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민규 |
건립 시기/일시 | 1649년 - 장차주 선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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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653년 - 한진기 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693년 - 이동근 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698년 - 이진휴 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08년 - 이의만 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748년 - 이석희 선정비 건립 |
건립 시기/일시 | 1860년 - 오경선 선정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삼도해운판관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8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삼도해운판관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길 67[공세리 193-16]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이동근|한진기|장차주|이진휴|이의만|이석희|오경선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해운판관 선정비.
[개설]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의 공세곶고지(貢稅串庫址) 앞에는 9기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진 비석군이 있다. 이 중 6기는 해운판관(海運判官)의 선정비, 나머지 3기는 아산현감(牙山縣監)의 선정비이다. 해운판관은 비석군 왼쪽부터 이동근(李東根), 한진기(韓震琦), 장차주(張次周), 미상(未詳), 이진휴(李震休), 이의만(李宜晩) 등 여섯 명이며, 한 명은 성명이 판독되지 않는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강가나 바닷가의 지정된 포구[조창]로 모은 뒤 배에 실어 서울의 창고[경창]까지 운송하는 제도가 조운(漕運)이다. 그중 수로를 이용하는 조운이 수운(水運), 해로를 이용한 조운이 해운(海運)이다. 해운판관은 해운 책임자로, 조운 관련 모든 업무를 책임졌으며, 삼도해운판관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조운을 책임지는 관리였다. 조운과 조운 책임자 관련 제도는 조선시대에 걸쳐 매우 복잡하게 변화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공세곶창은 충청도 40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하던 매우 중요한 조창이었다. 충청남도의 대부분과 충북의 청주·문의·옥천·회인과 조선시대 충청도에 속했던 경기도 평택 등이 해당한다. 조선 후기에도 중요한 조창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삼도해운판관이 주재하였고 선정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삼도해운판관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삼도해운판관비는 공세곶창에서 충청도 일대의 생산 세곡을 수납하고 운송하는 일을 관리했던 ‘해운판관’들의 행적과 덕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위치]
삼도해운판관비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3-16번지, 공세곶창[공진창] 창성의 석축 성벽 앞에 있다. 인근에는 공세곶창 터에 자리 잡은 공세리성당이 있다.
[형태]
[해운판관 선정비]
1. 이동근선정비
이동근[1644~?] 선정비는 ‘겸삼도해운판관이공동근선정비(兼三道海運判官李公東根善政碑)’라고 앞면에 새겨져 있고, 이수에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비석 받침[碑座]은 근래에 시멘트로 만들어졌는데, 원래의 받침돌이 거북 모습의 귀부였는지 네모난 비좌였는지 알 수 없다. 1693년 건립되었다.
2. 한진기선정비
한진기[1610~1665] 선정비는 ‘겸삼도해운판관한공진기청덕선정비(兼三道海運判官韓公震琦淸德善政碑)’, ‘덕흡삼창, 은류만고(德洽三倉, 恩流萬古)’라고 새겨져 있다.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된 이수가 있으며, 거북 모양 비석 받침[龜趺]이 있는데 머리 부분에 절구처럼 큰 구멍이 있다. 1653년에 건립되었다.
3. 장차주선정비
장차주[1606~1651] 선정비는 ‘겸삼도해운판관장공차주(兼三道海運判官張公次周)’, ‘청덕무사, 영세불망(淸德無私, 永世不忘)’이라고 앞면에 조각되어 있다.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네모난 비석 받침이 있다. 1649년에 건립되었다.
4. 성명 미상의 선정비
성명 미상의 네 번째 비석은 이수와 네모난 비석 받침을 갖추었으나, 비문이 마모가 심해 윗부분의 ‘兼三道海運(겸삼도해운)’ 정도만 판독할 수 있다. 1682년에 건립되었다.
5. 이진휴선정비
이진휴[1657~1710] 선정비는 ‘도사겸해운판관이공진휴비(都事兼海運判官李公震休碑)’, ‘애휼조졸, 영세불망(愛恤漕卒, 永世不忘)’이라고 앞면에 조각되어 있다. 이수와 네모난 비석 받침을 갖추었으며, 1698년에 건립되었다.
6. 이의만선정비
이의만[1650~1736] 선정비는 ‘도사겸해운판관이공의만(都事兼海運判官李公宜晩)’, 덕흡조대 만세불망비(德洽漕臺萬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윗부분이 둥근 원수형 비석에 네모난 비석 받침이 있다. 1708년에 건립되었다.
[아산현감 선정비]
1. 이석희선정비
이석희[1681~?] 선정비는 비신 상단이 둥근 원수형 비석에 네모난 비석 받침이 있다. 앞면에 ‘현감이후석희선정비(縣監李侯錫禧善政碑)’, ‘덕흡조졸, 영세불망(德洽漕卒, 永世不忘)’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1748년에 건립되었다.
2. 성명 미상의 선정비
성명 미상의 여덟 번째 비석은 ‘강희사십칠년무자팔월립(康熙四十七年戊子八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옆의 이의만 선정비 뒷면의 내용과 동일하다. 원수형 비석에 네모난 비석 받침이 있으며 1708년에 건립되었다.
3. 오경선선정비
오경선[1821~?] 선정비는 ‘현감오후경선영세불망비(縣監吳侯敬善永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다. 원수형 비석에 네모난 비석 받침이 있으며, 1860년에 건립되었다.
다른 직책을 가진 관리가 해운판관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문의 직책 앞에 ‘겸(兼)’ 자가 붙어 있다. 이진휴나 이의만의 경우 충청도사로서 충청도 해운판관을 겸하였기 때문에 ‘삼도(三道)’가 빠져 있다. 삼도해운판관비들의 건립 시기는 1649년부터 1708년으로 조선 후기에 삼도해운판관 또는 충청도 해운판관이 있을 때이다. 1762년(영조 38)에 충청도 해운판관이 혁파된 뒤 아산 인근 지역 몇 개 고을의 조운을 아산현감이 관리했기 때문에 해운판관이 아닌 아산현감의 선정비가 공세리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석희의 경우처럼 비문을 통해 조운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으나, 1762년 이전의 비석이어서 세부 사항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삼도해운판관비의 건립 시기는 1649년부터 1708년으로 해당 시기 조운과 조창 제도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다양한 형태를 지닌 삼도해운판관비를 통해 비석의 다양성과 변화를 엿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6기의 삼도해운판관비는 공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공세곶창의 역할과 위상을 잘 보여 주는 아산 지역의 소중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