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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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回龍里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미숙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2년 - 「회룡리 전설」 이경미, 송재금이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서 현지 조사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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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회룡리 전설」 『온양아산의 민속』에 수록 |
관련 지명 | 회룡리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
채록지 | 회룡리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황룡|세종대왕 |
모티프 유형 | 희생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서 용과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회룡리 전설」은 하늘에서 잘못을 저지른 용이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로 내려와 수호신으로 마을을 지키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회룡리 전설」은 1992년 이경미, 송재금이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로 현지 조사를 나가 채록한 것을 바탕으로 1992년 온양문화원에서 발행한 『온양아산의 민속』에 「회룡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는 본래 온양군 동상면 지역으로, 지형이 회룡고조[산의 지맥이 삥 돌아서 본산과 서로 마주함]로 되어 있어서 ‘회룡리’라 하였다. 그러나 회룡리에 대한 다른 내력으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회룡리 마을 마주봉 뒤쪽 절터골에 옛 절터가 있었는데, 하늘나라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쫓겨난 황룡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황룡은 하늘나라에서 쫓겨날 때 절터에 살면서 아랫마을 사람들을 온갖 재앙으로부터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3년 동안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소임을 다하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데, 단 3년 동안 절대로 절터를 떠나면 안 된다고 하였다. 황룡은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물리쳐야 했고, 가뭄이 들면 비가 내리도록 조화를 부려야 했고, 홍수가 나면 홍수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마을에 불행이 닥치면 마을 사람들보다 더 마음을 졸여야 했고, 늘 마을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이렇듯 마을을 위해 노심초사 일을 하는 황룡 덕분에 아랫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루는 황룡이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을을 돌보고 있는데, 저녁 무렵 갑자기 억수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몰두하다가 눈병을 얻어 심하게 고생하였는데, 바로 이때 신하들의 권유로 세종대왕이 일행들과 함께 온양으로 탕치[온천에서 목욕하여 병을 고침]를 가던 중이었다. 날은 저물고 갑자기 비까지 내려 세종대왕 일행은 길을 잃고 헤매는 낭패한 상황에 처했다. 이를 본 황룡이 세종대왕 일행을 불쌍히 여겨 농부로 변신하여 온양온천까지 무사히 안내해 주었다. 세종대왕 일행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었으나, 황룡에게는 절대 절터를 떠나지 말라는 하늘의 명을 어겼으니 큰일이 난 것이다. 명을 어겼으니 다시 절터로 돌아갈 수도 없고, 3년 후 승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황룡은 이무기가 되어 온천 가까이에 있는 용화리에서 살게 되었다.
한편, 세종대왕은 온천에서 탕치 후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 소문을 듣고, 이무기가 된 황룡을 위해 절터에 훌륭한 절을 지어 주었다. 이를 본 하늘나라에서 황룡의 죄를 사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아랫마을을 지키게 해 주었다. 용이 절터로 돌아오자 마을은 다시 용의 보호를 받게 되어 평화롭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무척 기뻐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황룡이 용화리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여 동상면[온양군]을 ‘회룡리’라고 불렀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탕치를 위해 온양온천으로 몰려들었고, 탕치를 하러 온 사람들은 용에게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를 했다. 용은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어 병을 고쳐 주었다고 한다.
3년이 되자 황룡은 하늘로 올라갔고, 황룡이 올라간 뒤부터는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 전란으로 절은 불에 탔고, 지금은 회룡리 마주봉 뒤 절터골에 남은 주춧돌만이 절이 있었다는 흔적을 보여 줄 뿐이다. 다른 설에 따르면, 왕건의 스승인 도선이 맨 처음 이곳에 절을 세웠다는 설도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없다.
[모티프 분석]
「회룡리 전설」은 황룡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희생정신을 보여 주었으며, 이를 알게 된 인간 또한 황룡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모두가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주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