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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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寧官衙門 |
이칭/별칭 | 해산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261-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상육 |
건립 시기/일시 | 1430년 - 보령관아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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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보령관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지정 |
현 소재지 | 보령관아문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261-1 |
성격 | 유적|건물|문루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보령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보령현 관아의 정문.
[개설]
보령관아문(保寧官衙門)은 보령읍성의 남문이다. 관아문은 돌로 성을 쌓은 읍성의 남쪽 성벽 성문 앞에 옹성이 설치되고, 문루 위에 초루(譙樓)[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가 들어서는 형태인 개거식(開据式)으로 만든 2층 누각 형태의 목조 건축이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보령읍성의 남쪽 성벽 중앙부에 있는 문루(門樓)이다. 보령관아문에 있던 조선 시대의 관아 시설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가 있다.
[변천]
보령관아문은 1430년부터 1432년까지 축성된 보령읍성과 함께 만들어진 보령관아의 정문이다. 이후 중종(中宗)[재위 1506~1544]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친필인 ‘해산루(海山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조선에는 큰 변화 없이 문루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보령읍성과 보령관아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읍성의 성벽과 관아 시설이 대부분 사라지고, 남성벽 일부와 보령관아문만 남아 있다.
[형태]
보령관아문은 장초석(長礎石)을 사용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의 문루이다. 1층은 출입을 위한 문이 중앙 칸에 달려 있고, 2층은 난간을 만들고 마루를 놓았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 형식이다.
[현황]
현재 다른 보령읍성의 시설물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지만, 보령관아문은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보수도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관아문 옆으로는 유적 안내판과 선정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관람을 위한 주차장도 있다. 2층 내부에는 현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현청의 여러 건물을 보수한 내용이 적혀 있는 ‘보령현 각청 영선 이혁기(保寧縣 各廳 營繕 釐革記)’이고, 다른 하나는 ‘어제 양로 무농 반행 소학 오륜행실 향음의식 향약조례 윤음(御製 養老 務農 頒行 小學 五倫行實 鄕飮儀式 鄕約條例 綸音)’이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보령관아문은 조선 전기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된 문으로 조선 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한 양식을 충실히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