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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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旺林里 |
이칭/별칭 | 왕지(旺池)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종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성환읍사무소 서쪽 약 3.5㎞ 지점에 있으며, 왕지산(旺池山)[왕주봉(旺住峯)] 아래 능선 서쪽 지역이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왕지리(旺池里)의 ‘왕(旺)’ 자와 임리(林里)의 ‘임(林)’ 자를 합쳐 왕림리(旺林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직산현(稷山縣) 이서면(二西面) 왕지리, 임리, 각금리(各今里)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아산군 둔포면 중왕리(中旺里) 일부를 편입시켜, 충청남도 천안군 성환면 왕림리를 개설하였다.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성환면 왕림리가 되었고, 1973년 성환면의 성환읍 승격에 따라 천원군 성환읍 왕림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천안군 성환읍 왕림리가 되었으며,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안군의 통합에 의하여 천안시 성환읍 왕림리가 되었다.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왕림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백두대간 금북정맥 성거산(聖居山)~영인지맥(靈仁支脈)~용와산(龍臥山)~왕지산~왕림리의 완만한 구릉 지대를 형성하며 동쪽으로 성환천과 서쪽으로 탁천(濁川)[둔포천, 군계천]이 발원하는 곳에 위치한다.
왕주봉은 사방의 조망이 매우 좋고, 드넓은 소사벌판과 예전 직산현의 강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아산현(牙山縣)과의 경계를 남북(南北)으로 구분짓던 산봉우리이다. 왕주봉 가까운 들에 고려 시대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채금(採金)을 할 때, 겨우 세 근을 얻어 가지고 갔다고 전해지는 구덩이 백 수십 개가 있는 금굴리(金掘里)[성환읍 송덕리 금곡]가 있다.
주변 드넓은 구릉 지대에 온통 대단위 성환 배 과수원이다. 봄에 하얗게 피는 배꽃은 한겨울 흰 눈 덮인 대지와 흡사하여 천안 12경으로 선정되었으며, 왕주봉에서 굽어보는 풍경은 가히 천하절경(天下絶景)을 이룬다.
[현황]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3.28㎢이며, 총 216가구에 540명[남자 279명, 여자 2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왕림 1~4리의 네 개 행정리가 있다.
『직산현지(稷山縣誌)』에 왕주리 집자서원제(旺住里 執字徐元堤)[남북 250척, 동서 139척]가 기록되어 있고, 조선 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파천할 때 직산현 서쪽 15리의 왕주봉에서 쉬며 왕지(旺池)[하나샘]의 우물을 길어다 마시고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 물이 대단히 차고 수량이 많아서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줄지 않는다.
왕지(旺池), 왕주(旺住)는 산봉우리와 연못, 마을이 그 아래에 있어 함께 통용된 지명으로 보이며, 왕주(王住)라고도 한다. 임리는 예전에 숲이 우거진 지역이라 하며, 각금리는 밤나무정이라고 하는데 부근에 예전 원(院) 터와 마방(馬房)이 있었고 소장수 주막,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구전(口傳)에 왕림은 본래 왕림(王臨)으로 “옛날이 임금이 지나가다가 들렀다.”라고 해서 임금 ‘왕(王)’ 자에 임할 ‘림(臨)’ 자로 섰는데 뒤에 왕림(旺林)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동쪽으로 성환읍 송덕리·율금리, 서쪽을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염작리, 남쪽으로 아산시 음봉면 의식리, 북쪽으로 성환읍 신방리와 경계를 이룬다.
특산물로 세계로 수출하는 성환 배가 매우 유명하다.
왕지봉에서 율금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커다란 아구배나무[돌배나무] 신목(神木) 성황당이 있어 정월 열나흘과 가을에 개개인이 시루떡을 해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