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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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洹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명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병조 판서를 지낸 김광부(金光富)의 10세 손이고, 이조 참의를 지낸 김로(金路)의 9세 손이며, 승지를 지낸 김신정(金愼貞)의 4세 손이다.
[활동 사항]
김항(金恒)[?~?]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통곡하고 슬퍼하였다.
삼 년간 슬퍼하며 죽으로 연명하였다. 할머니가 가엾어서 음식을 권하였으나 먹지 않았다. 성장하면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섬기는 데 더욱 효성을 다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해서 소생시켰다.
할머니의 상을 당하여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아버지의 산소를 옮긴 후에도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여섯 해 동안 정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호조 좌랑이 추증되었다.
아들 김득휘(金得輝)도 아버지를 본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등에 큰 종기가 나서 증세가 악화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병을 치료하였고, 어머니의 병이 위독해지자 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해서 다시 살렸다. 할머니가 노환으로 기력이 쇠약해지자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목욕을 시켜 드렸으며, 직접 고기를 잡아 음식을 해 드렸다. 나라의 제삿날에는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웃 어른들께는 술과 과일을 대접하는 등 부모와 같이 섬겼는데,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지극한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호조 좌랑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