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115 |
---|---|
한자 | 天安喪輿 |
이칭/별칭 | 천안 상여,천안 행상,대흥동 상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우 |
생산|제작처 | 상여 공장 대경 공예사 -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182-2번지 |
---|---|
성격 | 상구|제구 |
재질 | 소나무|유목|자장나무|피나무 |
용도 | 의례용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대흥동 일대 도로변 상여 공장에서 제작한 상여.
[개설]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상여, 이 상여를 만드는 공장으로 전국에서도 천안 상여의 이름이 높았다. 천안 상여의 명성을 간직하면서 1980년대까지 천안역 남쪽 온양으로 향하던 대흥동 길가에 상여 공장 여러 곳이 성업을 이루었다. 천안은 육상과 철도의 교통이 발달하여, 특히 국도 1호선의 경도이며 장항선의 시발점인 교통 요충지여서 상여 제작업의 자리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
[연원 및 변천]
1970년대만 하더라도 대흥동 거리에는 공신 상여, 태화 상여, 서울 상여[대표자 이금성], 천안 상여[대표자 김용래] 등이 있었다. 거기에 1980년대 들어 영생 상여[대표자 유중렬], 대경 상여[대표자 김석도], 민속 상여[대표자 강흥석] 등이 들어서서, 병천 농협의 가내 수공업과 그리고 목천 지역 대신 천막의 상여 제작과 함께 천안 지역 상여 제작업의 호황을 주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장례 문화의 변천과 도시 발전이라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천안시 중심부 대흥동 상여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2012년 현재 대경 상여 한 곳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형태]
일제 강점기에서 1980년대까지 성업이었던 대흥동 상여 공장들은 가내 수공업의 형태에서 점차 기계적 가공의 작업 방식으로 바뀌었다. 단지 외부 단청은 사람들의 손으로 일일이 도안하고 채색하는 기법이 이어졌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천안 상여는 천안역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상설시장과 5일장이 형성되는 재래시장의 중간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번창할 수 있었으나 새로운 인식과 변화라는 사회적 변환 앞에서 속수무책 폐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천안에서 가장 번화했던 대흥동 거리에 여러 곳의 상여 제작업체가 가동하여 천안 상여의 전성기를 맞았었는데, 1980년대 들어 장례 문화의 변화와 도시발전의 틀 속에서 갑자기 한순간에 대흥동 거리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