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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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市場 |
영어의미역 | Market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관률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교환·거래하는 장소.
[개설]
시장이란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시장을 장시(場市) 혹은 장(場)으로 불렀다. 오늘날 재래시장 혹은 정기 시장과 비슷한 형태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장문(場門)이 발생하여 농산물의 교환·판매가 이루어졌던 조선 시대 제9대 성종(成宗)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도에서 기근을 계기로 형성되었던 장문의 관례는 충청도 및 경상도로 파급되었다. 장시는 닷새마다 한 번씩 열리는 1일, 6일장이 대부분이었다. 1914년 9월 조선 총독부령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시장은 재래시장[일정 장소에서 매일 혹은 정기로 다수의 수요 공급자가 모여 화물의 매매·교환], 공설 시장[20명 이상의 영업자가 일장옥(一場屋)에서 주로 곡물 및 식료품의 매매] 그리고 어채 시장(魚采市場)[위탁을 받아 경매 방식에 의해 화물의 판매]으로 구분되었다.
칠곡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많은 산물이 칠곡 땅을 거쳐 육로로는 추풍령, 조령, 죽령을 지날 수 있었고, 수로로는 상주, 안동과 일본까지 무역이 빈번하였던 곳이다. 이렇게 교통의 중심지이다 보니 상업이 발달하게 되고 시장 형성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1832년(고종 19)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吧誌)』에 따르면 우암장, 매원장, 상지장, 남창장 등이 존재하였다.
[변천]
조선 시대 우암장은 1920년대 동명장으로 변하여 현재의 동명 시장 기초가 되었다. 매원장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왜관에 들어오면서 상권이 왜관으로 옮겨 가 오늘날 왜관 시장의 기틀을 가져오게 되었다. 칠곡군의 시장은 해방 이후인 1950년대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칠곡을 대표하는 왜관 시장은 1950년대 우시장의 개장과 더불어 점차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시장 개발 촉진법에 따라 시장 건물도 현대식으로 바뀌어 상설 시장 형태로 변화였다. 이후 칠곡 이외의 면소재지에도 근대 시장인 신동 시장, 동명 시장, 북삼 시장, 약목 시장이 형성되어 주민과 상인 간 상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1960년대에는 「시장법」, 「부정 경쟁 방지법」, 「상업 시행령」 등이 각각 제정·공포되어 상행위 질서가 형성되어 갔다.
한편 1970년대 본격적인 근대화의 물결은 전통적인 시장의 쇠퇴를 가져왔다. 경북 고속 도로 개통과 더불어 유통 구조의 근대화가 꾸준히 추진되면서 슈퍼마켓이나 소매상점들이 시장을 대신하여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의 공급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근대화는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한 정기 시장들의 쇠퇴를 가져왔고, 칠곡군의 경우 신동 시장과 북삼 시장이 사라지게 되었다.
[분포 현황]
2014년 6월 현재 칠곡군의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겸하고 있는 왜관 시장과 정기 시장인 약목 시장과 동명 시장 등 총 3개의 시장이 있다. 이들 시장의 총 매장 면적은 3,125㎡, 대지 면적은 1만 2365㎡이다. 상설 시장인 왜관 시장은 약목 시장이나 동명 시장에 비해 규모가 크고 이용 고객이 많다. 또 왜관 시장 번영회가 조직되어 칠곡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설 시장인 동시에 오일장[1일, 6일장]인 왜관 시장의 면적은 4,367㎡이고 점포수는 120여 개이다. 2009년에는 비가림 시설과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하였다.
1921년에 개설된 동명 시장은 4일, 9일장으로 열리고 있고, 1914년 개설된 약목 시장은 3일, 8일장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세 시장 모두 시설이 노후화되고 소방 및 통신 시설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편 약목 시장과 동명 시장은 인근에 신유 장군 유적지(申瀏將軍遺蹟地) 등 문화 유적과 도립 공원인 팔공산이 위치하여 많은 관광객이 각종 지역 특산물과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