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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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谷鑑湖堂 |
영어의미역 | Gamhodang Shrine |
이칭/별칭 | 감호당,감호정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1[매원리 4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있는 이윤우가 강학했던 정사.
[개설]
칠곡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 담양부사를 지내고 흥학에 힘쓴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가 매원마을의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한다. 후에 아들인 이도장(李道章)[1607~1677]에게 물려주게 되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독서(讀書)와 강도(講道)에 힘써 건물의 주인으로 추대되었다. 이윤우는 칠곡 사양서원과 성주 회연서원에 봉안되어 향사되고 있다. 2014년 2월 17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매원마을 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한다.
[변천]
칠곡 감호당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10년(광해군 2) 이윤우가 사직 후 향리에 돌아온 때부터 1624년(인조 2) 담양부사로 도임한 시기인 1610~1624년 사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또한 감호당 중수기문을 비추어 볼 때도 17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후 두 차례의 보수를 했고 1838년(헌종 4)에 크게 중수한 바 있으며, 2002년에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수 기문과 현존 건물을 볼 때 창건 당시 건물이 중건되었으나, 현재 건물의 규모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일곽 서쪽의 일각문을 내고 방형으로 구획한 돌담 안에 ‘一’자형 건물을 남향으로 앉혀 배치했다. 감호당 뒤에는 우측에 직교하여 ‘一’자형의 부속건물이 있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평면 형식은 중앙에 2통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1칸 온돌방과 우측에 2칸 온돌방이 배열된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양 온돌방 뒤에는 반침이 설치되어 있다. 청방간에는 2분합 들문이 설치되어있고 온돌방 전면에는 쌍여닫이와 외여닫이 띠살창, 측면에는 외여닫이 띠살창이 설치되어 있다. 대청 배면은 싸여닫이 판장창(바라지창)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가구는 3량가로 단촐한 구성을 하고 있다. 기둥 상부의 결구 방식은 정면 대청 상부만 장혀수장이고 나머지는 민도리 형식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앉힌 다음 방형 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마감했고 막새를 들였다. 양 측면 박공쪽은 풍판을 달아내었다. 정자, 정사 등 강학지소 건물의 일반적 지붕 구조가 팔작지붕이 많은데 비해 보기 드문 형태이다.
[현황]
매원리 마을회관 뒤편에 토석 혼축 담장을 두르고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최근 담장 보수와 기와 교체가 이루어 졌다. 특히 지붕 끝 처마에는 원래 없었던 막새가 달려있다.
[의의와 평가]
여러 번의 보수와 최근 중수로 인해 옛 목부재는 남아있지 않으나 초석과 건물의 평면형태는 창건 당시부터 많이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초 이 지방 정사류 건축의 이해를 돕는데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지붕이 팔작이 아니라 맞배형태인 점은 지방색과 함께 시기적 차이로 볼 수 있다. 서원이나 서당보다 한 단계 아래인 사설 강학(講學) 활동 공간으로서 칠곡 지방의 일반적 양식과 평면 구조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조선 중·후기 매원리 일대의 강학 공간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