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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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弘郁 |
영어음역 | Gim Honguk |
이칭/별칭 | 문숙(文叔),학주(鶴洲),문정공(文貞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대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에 배향된 인물.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적(金積)이다.
[활동사항]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전적(典籍)·지평(持平)·수찬(修撰)을 거쳐, 1645년(인조 23)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김자점(金自點)의 뜻에 거슬려 사직하였다.
1648년(인조 26) 응교(應敎)로 있을 때 관기 숙정과 민생고 해결을 위한 상소를 하였다. 1650년(효종 1)에 집의(執義)·부응교·암행어사·겸보덕(兼補德)·사인(舍人)을 지냈다. 1654년(효종 5)에 사사된 소현세자빈 강씨 일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강옥(姜獄)’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다가 죽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학주집(鶴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57년(효종 8) 송시열의 청에 의하여 자제와 족속에게 내린 금고령을 해제하고, 관작을 회복시켰으며, 이조판서를 증직하였다. 충청남도 서산시 성암서원(聖巖書院),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知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