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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81
한자 權吉
영어음역 Gwon Gil
이칭/별칭 응선(應善),영풍군(永豊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성별
생년 1550년연표보기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안동(安東)
대표관직 상주판관(尙州判官)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다.

[활동사항]

음보로 기용되어 1590년(선조 23) 금산제원찰방,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치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동래부(東萊府)를 잃고 도주하여 온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군사와 합세하였다. 상주에서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한 많은 군사와 백성들과 함께 싸웠으나 무기와 군병의 열세로 패하여 4월 25일 전사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12년(광해군 4)에 상주에 사의비(死義碑)가 세워졌다. 1649년(인조 27)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1699년(숙종 25)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고, 선조금봉산(金鳳山) 아래에 정려가 세워졌으며, 1772년(영조 48)에 중수하고 채제공(蔡濟恭)이 중수기문을 지었다. 1825년(순조 25) 영풍군(永豊君)에 봉해졌고,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권길 충신각은 2002년 5월 18일 음성군향토문화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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