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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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錫五 |
영어음역 | Jeong Seokoh |
이칭/별칭 | 유호(攸好),정간공(貞簡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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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691년 |
몰년 | 1748년 |
본관 | 동래 |
대표관직 | 좌의정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논척하여 유배가도록 했으나 4년 후 소론의 실각으로 삭직당했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사간에 복직되고 승지를 거쳐 1736년 등극진하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도승지·호조판서를 거쳐 1746년 55세에 우의정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좌의정이 되었으나 김양택의 상소로 사직되었다.
1748년(영조 24)에 영돈녕부사로서 동지사겸사은사가 되어 효현황후의 시호를 올린 것을 진하하고, 공물을 바치기 위해 청나라로 가는 도중 십리보(十里堡)에서 병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으며 묘역은 약 200여 평으로 상석과 망주석·문관석이 있으며 조명교(曺命敎)가 짓고 조윤형(曺允亨)이 쓴 묘갈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신도비(神道碑)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