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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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生庵址 |
영어의미역 | Gim Saeng's Hermitag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강민식 |
성격 | 불교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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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전기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 김생이 글씨 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불교 암자의 터.
[개설]
김생암지는 원통산 서쪽 기슭에 있는 폐사지로, 김생암이 있었던 터이다. 김생은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에 능하였으며,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 불렸다. 송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변천]
김생암은 일제강점기 때까지 있었던 작은 암자로서, 1962년에 김생암지 아래로 절을 옮기고 금강암(金剛庵)이라 하였다. 1994년 법당을 새로 건립하고 주변의 사역(寺域)을 넓히는 불사(佛事)를 일으킨 후에 절의 이름을 관음사(觀音寺)라고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김생암은 고문헌 기록에 나오지 않아 유래는 알 수 없고, 단 일제강점기 때 간행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김생암은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 있다. 김생은 신라 때의 중으로 이곳에서 글씨쓰는 연습을 하였다. 나뭇잎을 따서 먹으로 쓰면 계곡을 채우며 내려갔는데 아래쪽 물이 검어졌다(金生庵在甘谷面圓通山下 金生新羅時僧 習筆於此 摘葉墨書 塞溪而下 水篤之黑)’라고 기록되어 있어 김생암이 감곡면(甘谷面) 원통산(圓通山)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생암은 「사찰조(寺刹條)」에서 기록하지 않고 「고적조(古蹟條)」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김생암 자체보다는 통일신라의 명필인 김생이 나뭇잎을 따서 글씨 연습을 함에 따라 계곡물이 막히고, 아래쪽 물이 검게 되었다는 전설에 더욱 비중을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