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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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 |
영어의미역 | The Tale of Tale of Min the Rogu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
집필자 | 정연민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망나니에 관한 설화.
[채록/수집상황]
1996년 『음성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과 민비가 서로 지지 않으려고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때에 나라는 극도로 혼란해지고 국가 재정이 어려워 매관매직까지 하고, 각 지방의 토호들은 여기저기서 토구질로 민심을 극도로 혼란하게 만들었다. 토구질은 양민들이 부지런히 일하여 근근이 모은 재산을 미묘한 죄명을 씌워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였다. 그리하여 민심은 갈수록 혼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조선 팔도 각 처에 사는 대성촌만 찾아다니면서 큰 도적질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민비의 열촌 오라버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다니면서 도적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포를 입고 큰 갓을 쓰고 사인교를 타고 사또 행차같이 하고 다니면서 민비의 세도만 믿고 가는 곳마다 큰소리치고 호령하였다.
어느 문중이든지 한번 도착하면 열흘 스무 날 묵으면서 닭과 돼지를 잡아 푸짐한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문중의 재산 정도를 낱낱이 조사하여 자기 마음에 흡족하도록 빼앗아 가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그러니 팔도강산 곳곳마다 명문대가 집만 찾아다니며 그런 도적질을 일삼았으니 사방에 소문이 자자하여 그를 칭하여 ‘민망나니’ 라고 하였다. 곳곳에 사는 명문대가들은 그 민망나니가 찾아올까봐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인교를 타고 오갑(梧甲)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통영갓에 도포를 입고 거드름을 빼면서 점잖은 사또 행차같이 하고 오갑 강당에 나타나 제집에 들어가듯이 들어앉은 것을 보고 수상히 여겨 몇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데 별안간 “여봐라!” 하더니 “이 집에 하인 없느냐?” 하였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오며 “나으리, 왜 그러십니까?” 하자, 화등잔 같은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너 빨리 가서 이 신씨 문중의 제일 어른을 모시고 오너라.” 하였다.
그 당시 문장으로는 항렬이나 연령으로나 웃오갑 신용대 댁의 할아버님이 제일 문장이었다. 그러나 재실에 사는 그는 어느 분을 모시고 와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서 있는데 “어서 모셔 오지 못할까?” 하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는 중에 집안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모였는데 사인교가 마당에 놓여 있고 사인교를 메고 온 가마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소문에 듣던 민망나니가 왔구나.’ 하고 짐작을 하였다.
집안 어른들은 살며시 밖으로 나오면서 그 재실에 있는 사람을 불러 속히 웃오갑 신용대 댁에 가서 민망나니가 왔다고 여쭙고 웃오갑 어른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오시도록 말씀드리고, 한편으로는 오갑과 새터에 사는 집안 분들을 소집하는데 민망나니가 왔으니 다 모이도록 하되 젊은 사람들은 몽둥이를 하나씩 가지고 오라고 기별하였다.
그때가 마침 정초라 집에서 노는 때이므로 민망나니가 왔다는 말을 듣고 “큰일 났네. 그놈 민망나니가 가는 곳은 어느 문중이고 거덜이 난다는데.” 하고, 불과 몇 시간 안 되어서 아래 오갑과 새터에 있는 문중 사람들은 다 모였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한데 모여서 동정을 살피고 국당장(국당은 신용대 할아버지의 호)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민망나니는 거만한 어조로 “당신이 신씨 문중에 문장이 되시오?” 하고 물었다.
“그렇소.” 하고 대답하고는 국당장은 “인사나 하십시다. 나는 신돈회요.” 하자 그는 자기 성명을 밝히지 않고 “나는 중전 마마의 열촌 오라버니요.” 하였다. 그러자 국당장은 “저런 괴이한 놈이 있나. 통성명하자는데 제 성명은 밝히지 않고 중전 마마의 열촌 오라버니라고 하니,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괘씸하게 생각하였다.
국당장은 밖으로 소변보러 나오는 것처럼 나와서 모여 있는 젊은 사람들을 불러 놓고, “방에서 내가 호령하는 소리가 나거든 방으로 들이닥쳐 갓을 벗기고 지져 밟고, 밖에 있는 사인교는 몽둥이로 때려 부수어서 타고 가지 못하게 만들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방에 들어갔는데 민망나니가 하는 말이 “우리가 여기서 여러 날 묵어 갈 터이니, 먼저 돼지 한 마리 잡고 닭 몇 마리 잡아서 술과 안주를 장만하고 조석 마련을 하시오. 그리고 봐 하니 종중이 부자인 듯한데 재산이 어느 정도나 되나 공개하고 우리에게 얼마 정도나 줄 수 있나 이야기하시오.” 하였다.
그러자 국당장은 벼락같이 호령을 하면서 “이놈! 흉악한 강도가 아니냐! 밖에 누가 없느냐?” 하자, 밖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와르르 들이닥치면서 다짜고짜 그놈의 멱살을 걷어들고 통영갓을 화닥닥 벗겨서 땅바닥에 놓고 발로 콱 밟아서 마당가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국당장은 “저놈을 뜰 아래로 끌어내라.” 하였다. 젊은 사람들은 그놈의 멱살을 잡아 쥐고 뜰 돌 아래로 끌어내려서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러자 국당장은 꿇고 앉은 그놈을 내려다보고 호통을 치면서 “이놈아, 이 나라의 국모이신 중전 마마께서 네놈보고 사인교나 타고 각 문중으로 다니면서 도적질이나 하라고 시키시더냐? 이놈, 관아에 고발하여 당장에 서울로 압송케 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며 호통을 치자 민망나니는 국당장을 쳐다보며 “제발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짓을 아니 할 테니.”라고 하면서 애걸복걸하였다.
그러자 국당장은 여러 문중 어른을 둘러보면서 “이놈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문중 어른들은 “그놈의 소행을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한 번만 용서를 하여 주십시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여러분이 이번 한 번만 용서를 하여 주자고 하시니 이번만은 놓아 줄 터이니 다시는 우리 문중에 얼씬도 하지 마라.” 하면서 호령을 하였다. 그러자 민망나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두리번두리번하며 사인교 메고 온 사람들을 찾는 꼴이었다.
그러나 사인교를 몽둥이로 때려 부수면서 가마꾼에게 “네 이놈들, 여기 있으면 요절을 낼 터이니 어서 도망가거라.” 하여 벌써 다 도망가고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사인교는 박살이 나고 가마꾼들은 도망가고 없으니 이리저리 둘러보며 허리를 굽히고 우물쭈물하더니 마당가에 있는 찌그러진 갓을 들고 꽁지가 빠져라 하고 도망을 가 버렸다.
그렇게 한 번 혼났으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또다시 그런 행세를 하고 다니며 더 큰 도적질을 하다가 결국은 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서 치죄(治罪)를 하였다. “네 이놈, 중전 마마를 욕되게 하고 민심을 혼란하게 한 죄는 죽어 마땅하다.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재산을 도적질한 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네 이놈, 팔도에 다니면서 보니 어느 문중이 제일 대접을 잘하고 어느 문중이 대접을 제일 못하더냐?” 하고 묻자, “충청도 충주 고을 오갑에 평산신씨가 대성으로 사는데 그 문중에서 제일 푸대접을 받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쫓겨난 민망나니」는 권력을 등에 업고 온갖 횡포를 일삼던 민망나니와 잘못된 권력에 굴하지 않고 강건함을 잃지 않았던 평산신씨(平山申氏) 오갑종중(梧甲宗中)의 국당장 신돈회의 기개가 일화가 되어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