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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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億秋 |
영어음역 | Park Eokchu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도식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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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박구량(朴久良) |
어머니 | 최신로(崔信老)의 딸 |
출신지 | 강릉 |
성별 | 남 |
생년 | 1523년(중종 18) |
몰년 | 1590년(선조 23) |
본관 | 강릉 |
제향 | 향현사 |
대표관직 | 부사 |
[정의]
조선 중기의 효자.
[가계]
강릉 12향현(鄕賢)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수량의 조카 선무랑(宣務郞) 박구량(朴久良)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최신로(崔信老)의 딸이다.
[생애]
1563년(명종 18)에 효렴과(孝廉科)에 천거되어 사옹원 참봉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에 청하현감(淸河縣監)으로 있다가 영평군수(永平郡守)와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지냈다. 1580년(선조 13)에 관직을 버리고 귀향했다. 3개 군현의 관리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활동사항]
박수량(朴遂良)의 문하에서 학문과 도의를 익혀 당시 유림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효행 또한 지극하여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아버지 박구량(朴久良)이 중병으로 누운 7년 동안 백방으로 간호를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과객이 박구량의 병에는 들오리가 제일이라는 말을 일러주었다. 박억추(朴億秋)는 당장 들오리를 잡으려 하였으나, 추운 겨울이라 오리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박억추는 혹시나 하고 들판에 그물을 치고 사흘을 지새웠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 들판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오리 두 마리가 대문 밖 우물가에 내려앉았다. 박억추는 오리를 향해 힘껏 돌을 던졌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한 쌍의 들오리가 모두 돌에 맞아 푸드득거렸다. 얼른 들오리를 잡아 아버지께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박억추가 들오리를 잡았다는 우물인 타압정(打鴨井)이 지금도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남아 있다. 그 후 아버지가 다시 병을 얻었을 때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잠시 소생케 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예를 다하여 상제(喪祭)를 치렀다.
[묘소]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전포(錢浦)에 있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요역(徭役) 면제와 정려(旌閭)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