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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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溪里 |
영어음역 | Sangyer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추,정암,증보:김정현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산계리는 주수천 중상류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남양리, 동북쪽은 현내리, 낙풍리, 서쪽은 왕산면 목계리, 남쪽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왕산면 송현리, 북쪽은 북동리, 낙풍리와 접해 있다.
[명칭 유래]
산계리에 산계사(山溪寺)가 있어 산계라 했다. 또 세 골[절골, 황지골, 영밑골]에서 흘러내리는 내가 세 개라 삼계라 한 것이 음이 변해 산계가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산계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에 가새골, 검단이, 곰밭골, 반바우, 곱실, 쇠바우, 서낭댕이, 절골, 영밑, 원뜨루, 조월뜰, 황지미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1955년 9월 1일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1970년대 산계리에 한라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서 마을이 많이 없어지고, 80여 가구가 되는 마을 사람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
[자연환경]
옥계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뚫린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가장 뒤에 석병산(石屛山)[1055m]이 있고, 동쪽 낙맥으로 자병산(紫屛山)[873m]이 있으며 그 사이에 조그마한 봉장산(鳳璋山)이 있다. 산계리는 골이 많고 깊어 물이 깨끗해 산자수명한 곳이어서 예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찾아서 자연을 즐기며 놀아 ‘반암 팔경(泮岩八景)’과 ‘산계팔경(山溪八景)’이 생겼다.
산계는 절골, 황지골, 영밑골 등 큰 골이 세 개가 있는데 절골에는 석화 동굴이 유명하다. 산에는 자생 회양목[도장 나무]과 고얌 나무가 유독 많이 있다. 그래서 고얌을 따먹기 위해 까마귀가 많이 몰려온다. 이 마을 향언에 늘 하던 일도 하기 싫어할 때를 빗대어 “산계골 까마귀가 고얌을 마다하나?”라 하고, 또 예부터 이 마을에 우씨(禹氏)들이 많이 살아 그들의 드센 생활을 빗대어 바깥에서 바람이 불어 나무나 숲이 우수수 떨어지면 “산계골 우 서방이 넘어 오나?” 하는 향언이 있다.
[현황]
산계리에는 다음과 같은 자연 부락들이 있다. 응달말은 조울뜰 내 건너 음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반대로 양짓말은 조울뜰 위쪽에 있는 양지 마을이다. 쇠바우는 조울뜰 위쪽에 있는 마을이며 소의 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으로 ‘반암 팔경’의 하나인 ‘설암 반조(舌岩返照)’에 해당하는 곳이다. 검단이는 쇠바우에서 서쪽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마을이다. 강릉 김씨들이 개척하여 ‘금단’이라 하다가 마을에 성을 붙이면 좋지 않다고 하여 ‘검단’으로 고쳤다.
반바위는 산계 2리 본동으로 산계골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면소재지인 현내에서 산계령 정상까지 절반이 된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원뜨루[院坪]는 산계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옛날 나라에서 나그네들을 위해 지어준 집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천퍼렝이골은 가새골 위쪽에 있는 골이다. 옛날 천퍼렝이골에서 은광을 할 때 하루는 광부들이 은을 캐러 굴에 들어갔다가 굴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 그러나 몇몇이 죽은 줄 몰라 죽은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광부들이 굴속에 들어가면서 벗어 놓은 퍼렝이를 세어 보니 천 개가 되었다고 한다. 즉, 천 개의 퍼렝이가 묻힌 곳이라는 뜻이다. 학림동은 산계 3리의 중심 마을로 숲이 우거져 학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산계팔경’의 하나인 ‘학림 청풍(鶴林淸風)’에 해당하는 마을로 서낭당이 있어 ‘서낭뎅이’라고도 한다. 이 밖에도 황지미·절골·영밑골 등이 있다.
산계 2리에는 산계 초등학교, 산계 3리에는 보건 진료소, 산계리 시내버스 종점이 있다.
문화재로는 천연기념물 제461호 ‘강릉 산계리 굴참나무군’, 강원도 기념물 제35호 ‘강릉 동대굴’, 강원도 기념물 제37호 ‘강릉 옥계굴’,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43호 ‘강릉 산계리 석탑’,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29호 ‘강릉 산계리 금옥계방역사적비(金玉契防役事蹟碑) 및 종선비(種善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