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2274
한자 新石器時代
영어음역 sinseokgi
영어의미역 New Ston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성주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약 기원전 1만년 전부터 1천년까지의 석기시대의 최종 단계.

[개설]

신석기시대에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 간석기의 사용으로 농경·수렵·벌채용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을 이용 개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는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문명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충적세의 가장 오래된 토기의 출현에서부터 청동기 사용 이전까지, 주로 채집·어로·사냥에 의한 식량공급을 배경으로 전개된 토기문화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 신석기시대의 새로운 농경자료들이 발견되고, 또한 우리나라의 토양이 산성임을 감안하여 농구 등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논의도 전개되고 있어,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변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3차례의 변화가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토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편평밑토기와 덧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전기와 빗살무늬토기가 주로 사용되던 중기, 다양한 그릇이 나타나며 바탕흙에 변화가 있던 후기가 그것이다.

[신석기유적]

강릉 지역의 경우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가 나오는 신석기시대 전기 및 중기의 문화가 여러 유적에서 확인된다.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진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발굴을 통해 유구 및 유물의 성격이 잘 파악된 유적도 많아졌다.

동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강릉 지역에서도 해안의 사구지대가 취락의 입지로 선호되었다. 송림리, 영진리, 가둔지, 초당동, 하시동, 금진리 등의 사구지대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넓게 분포한다.

이에 비해서 해안의 구릉지가 거주지로 선택되었던 예가 있는데 동덕리, 판교리 등이 그것이다. 하천이 유입되는 지점의 사구지대나 해안에 극히 인접한 구릉지가 선택되는 것은 해양과 석호를 생계의 기반으로 삼았던 주거 선택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강릉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 중에는 내륙 쪽으로 흠씬 들어와서 구릉이 교대되는 지형내의 구릉 상 주거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장덕리·유천동·홍제동·지변동 유적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러한 유적의 입지는 산림지대를 생계경제의 기반으로 삼았거나 소규모 농경을 시작했던 집단의 입지로 이해된다.

강릉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오는 유적으로 발굴된 것은 강릉 초당동유적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지변동유적하시동유적도 발굴조사, 혹은 시굴조사를 거쳐 유적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들 유적을 통해 볼 때, 이 지역 빗살무늬토기 문화는 여러 지역으로부터 유입되어 혼합되어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황해도와 한강 하류역의 즐문토기문화가 영서지방을 거쳐 유입되고, 금강 유역이나 남해안지역의 문화요소도 섞여 있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거기에 중국 동북지방, 요하(遼河) 유역의 신석기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변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전·중기의 석기조성은 초기 단계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두드러진 변화는 결합식낚시와 결합식작살과 같이 대형어류를 상대로 한 석기가 사라지고 돌어망추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타제한 격지석기들의 비중이 줄어들며 초당동유적에서와 같이 반마제의 굴지구들이 출토된다. 마제의 돌화살촉이 이전 시기보다 훨씬 발달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각종 돌도끼와 같이 작업용 공구류가 발달하는 편이다. 이 시기에 또한 자주 출토되는 석기로는 갈돌과 갈판이 있는데 도토리와 같은 견과류의 제분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