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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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奎 |
영어음역 | Yi Donggyu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도식 |
[정의]
조선시대의 효자.
[활동사항]
이동규의 아버지 이선빈(李善彬)이 남의 묘터를 잡아준 일이 있었는데 이 묘터가 상가집 종인 개산(介山)의 아버지 묘와 가까워 개산(介山)이 이선빈에게 원한을 품고 독살하였다. 이동규는 급히 장사를 지내고 관가에 이 사실을 알려 살인 사건으로 재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개산(介山)이 끝내 자기가 지은 죄를 부인하자 방백(方伯)과 수령(守令)들도 명확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세월만 흘렀다. 이동규는 너무나 억울하여 상복을 벗지 않고 세 번이나 북을 쳐서 임금에게까지 알려 밤낮으로 원수 갚기를 기약하였으나 17년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방백 유복명(柳復明)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동안 전후 처리문서를 하나하나 살핀 뒤에 개산(介山)의 죄를 밝혀내고 장살(杖殺)하였다. 사건이 마무리 되고 나서야 17년 동안 입었던 상복을 벗었다. 그 때 나이가 40세에 가까웠으나 장가를 들지 못했다. 강릉부사 김인정(金仁政)이 그의 지극한 효성을 가상히 여겨 친히 중매를 서서 장가를 들게 하고 자신의 녹봉을 털어 집안 살림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어사가 계를 올려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었으며,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