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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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大洞大村-堂山祭 |
이칭/별칭 | 송대동 대촌마을 동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부유진 |
중단 시기/일시 | 1980년대 이후 - 송대동 대촌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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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대동 대촌마을 뒤 |
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2월 1일 |
신당/신체 | 할머니당산[은행나무]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대동 대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음력 2월 1일 오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송대동 대촌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2월 1일 오전에 대촌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대촌마을은 대나무가 우거져 '죽촌'이라 하였으나 '대촌'으로 와전되었고, 개촌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강릉유씨(江陵劉氏)가 들어와 성촌하였다고 전한다. 대촌마을에는 위친계와 은행나무계가 조직되어 있는데, 위친계는 이웃의 애경사를 서로 돕기 위하여, 은행나무계는 마을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당산제를 지낸 최초 시기는 특정하기 어려운데 1980년부터 규모가 커지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중단되어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대촌마을에는 할머니당산이 있는데, 마을 뒤쪽의 은행나무가 신체이다. 은행나무의 수령은 600여 년이 되었고, 둘레 4.8m, 높이 10m의 크기이며 광주광역시 지정 보호수이다.
[절차]
송대동 대촌마을 당산제는 정월 20일경 마을회의를 열어 화주 1명, 헌관 1명, 축관 1명, 집사 1명 등 모두 4명의 제관(祭官)을 뽑는다. 통장이 화주와 헌관을 겸하고 음식 준비도 통장집에서 이루어지는 등 당산제의 전반이 통장 주관 하에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통장은 제를 지내기 한 달 전부터 상가나 산고가 든 곳은 출입하지 않고 개고기 등의 궂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당산제를 모시기 위한 은행나무계가 조직되어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과 은행을 판 돈으로 제비(祭費)를 충당한다. 제물(祭物)로는 과일, 나물, 어물 등을 구입한다. 보통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머리는 제사에 올리고, 나머지는 제사 다음 날 나누어 먹는다. 제기(祭器)는 통장 소유의 그릇을 빌려 쓴다. 금줄과 금토는 당산나무에만 하여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제사는 음력 2월 1일 오전에 지내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제사 전날에는 반드시 목욕재계를 해야 하며, 제사 때에는 누구나 한복 차림을 한다. 이날 오전에 마을회관 앞에서 청년들이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만든다. 과거에는 각 가정마다 짚을 거두기도 하였는데, 기계로 꼰 새끼를 구입하여 30m 가량의 줄을 완성한다. 굿꾼들이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은 줄을 어깨에 메고 가는데 제물이 그 뒤를 따른다. 할머니당산에 도착하여 진설을 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줄을 들고 서 있는다. 이후 화주이자 헌관인 통장이 먼저 재배한다. 이후 독축을 하고 마을의 연장자들이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이때 뒤에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할머니가 아들을 태워 준다는 속신이 있어서 아들이 없는 사람은 아들을 태워 달라고 기원하며 절을 한다. 소지와 음복은 간단하게 한다. 헌식은 진설한 음식 하나하나를 종이에 각각 싸서 당산 옆의 땅을 파서 묻는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축관이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굿을 치면서 마을을 도는데 줄은 그 뒤를 따른다. 줄이 마을회관 앞으로 오면 남녀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 편이 이겨야 좋다는 속설이 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잘라 회관 앞에서 태운다. 때를 맞처 통장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먹으며 축제적인 분위기를 이어간다.
[현황]
송대동 대촌마을 당산제는 1980년부터 규모가 커지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중단되어 진행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