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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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理髮職工組合 |
영어공식명칭 | Gwangju Barbershop Association |
이칭/별칭 | 광주이발공조합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일례 |
설립 시기/일시 | 1926년 2월 8일 - 광주이발직공조합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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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광주이발직공조합 - 광주광역시 |
성격 | 사회단체 |
설립자 | 김석윤, 김명상, 강신열, 박상기, 김수빈, 임철, 박윤희 등 |
[정의]
1926년 2월 8일 광주광역시에서 이발 노동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노동조합.
[개설]
1920년대 노동자계급의 사회 경제적인 해방을 위한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5년부터 1926년 사이 광주 지역에서는 각 직업별 조합 결성이 전개되었다. 광주 지역에서는 인쇄직공조합, 철공조합, 완차부조합, 정미노동조합과 같은 직업별 조합이 결성되자 광주이발직공조합도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광주이발직공조합의 창립 결의를 보면 그 설립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첫번째, 노동시간에 관한 건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한다. 다만 명절 전후 5일간은 시간을 연장하여 일한다. 두번째, 점주의 무리한 행위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세번째, 광주노동연맹발기에 가맹한다.
이를 통해 광주이발직공조합의 설립은 일제 치하의 특수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해방을 목표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변천]
광주이발직공조합의 설립 시기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먼저 『조선일보』에는 1926년 2월 8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위원장 김석윤, 위원 김명상, 강신열, 박상기, 김수빈, 임철, 박윤희 등을 선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동아일보』에는 1926년 3월에 조합원 26명이 창립하였고 당시 서무, 교양조사, 구호 등의 부서를 갖추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조선일보』의 기사가 더 상세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주이발직공조합은 가난한 사람의 경제와 조합 유지를 위해 공설이발관을 설립하고자 계획하였다. 그러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의 박화성이 이천원을 2년 기한으로 저리로 융자해 주기로 하였다. 이후 조합에서는 7월 17일 총회를 소집하여 공설이발관 설립에 대한 사업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공설이발관을 짓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고 기계를 주문하는 등 제반 준비를 진행하였다. 이후 당국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노동자들의 단합과 권익을 위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