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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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國 最大-苗木 生産地, 慶山種苗産業特區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진량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100년 종묘 산업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경산시 종묘 산업의 어제와 오늘.
[개설]
경산종묘산업특구는 2007년 4월 20일 재정경제부 고시[제2007-20호]에 의해 지정된 전국 최대의 묘목 주 생산지로,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과 진량읍 일원 9개 리 600㏊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경산 묘목은 묘목 산업에서 브랜드화를 가장 먼저 선포하여 일찍부터 지역 특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도 하다. 경산종묘산업특구의 묘목 생산량은 전국 최대 규모로, 현재 국내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 최초의 묘목 산업 발상지이기도 한 경산종묘산업특구의 비상을 위해 경산시는 생산 농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경산의 특산물, 묘목]
경산 지역에서 재배되는 과수 묘목은 무병묘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금호강 강변에 펼쳐진 토심이 깊고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사질양토에서 생산되어 뿌리 발달이 좋다는 특성을 가진다. 또 키워서 옮겨 심었을 때 뿌리를 내려 안전하게 사는 능력이 뛰어나며, 과실이 충실하고 꽃의 색깔이 선명하여 재배 농가의 선호도가 높다. 2020년 6월 현재 경산 묘목의 재배 면적은 600㏊에 달하며, 과수 400㏊, 장미 60㏊, 관상수 등 140㏊ 규모이다. 재배 농가는 680호이고, 생산량은 3천만 주에 이르러 전국 묘목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종류별로는 사과·배·복숭아·포도 등 유실수가 2천만 주, 장미 등의 화훼와 관상수, 약용 나무가 1천만 주 정도이다.
[100년을 이어 온 종묘 생산 역사]
경산 묘목의 역사는 1912년 3월 조선총독이 전국 각 도 장관에게 보낸 훈시에서 뽕 품종에 대한 누에치기를 적극 독려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뽕나무를 거의 재배 관리하지 않는 야생 상태에 있었고, 잎의 질이 나쁘고 수량도 적은 산뽕이나 구찌뽕을 뿌리로 번식하는 상태였다. 반면에 일본은 1870년 잠종 제조법이 제정되는 등 적극적인 보호와 장려 정책으로 잠사업이 급격히 부상하고 잠사 기술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생사는 1868~1912년 사이 일본의 중요한 수출 품목이었으며, 잠사업은 외화 획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1912년 일본인 고바야시가 경산 지역에 들어온 것은 경산 묘목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경산 지역은 오목천 상류 지점인 현재의 용성면 송림리[이하 행정 구역명은 2020년 기준으로 표기함]에서 한지 생산을 위한 닥나무 재배가 활발하였고, 오목천 중류 지점인 용성면의 곡란리·곡신리·미산리 일대와 자인면 신도리, 압량읍 신월리 일대에서는 질 좋은 재래종 뽕나무가 생산되어 양잠 농가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었다. 또 오목천 하류 지역인 임당동 일대에도 하천 변에 다수의 뽕밭이 조성된 상태였지만, 뽕나무 묘목의 재배 방식에 관한 서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하양읍 대조리에 일본인 과수 기술자 고바야시가 이주하여 왔고, 5,000평[16,529㎡] 규모의 뽕밭을 마련하여 뽕나무 묘목 재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하양읍의 대조리·환상리 지구를 뽕나무 묘목 생산 적지로 결정하였다. 이후 인근 농민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고바야시의 재배 기술과 방법을 익히게 되었고, 참여하는 농가가 점차 늘어나게 되며 묘목 재배에 관한 관심도 높아져 갔다. 여기에 더해 1914년 일본인 시누하라 사키마토 등이 일본에서 국광, 홍옥, 골덴 등 사과 묘목을 들여와 사과 단지를 조성하고 사과 묘목 재배와 유실수 접목 기술 등을 보급하였다. 그 결과 1920년대쯤에는 하양읍 금락리·환상리·대조리와 진량읍 부기리·보인리 주변에 뽕나무 묘목과 유실수 자가 생산 기반이 조성되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그동안 축적된 접목 및 재배 기술을 토대로 직묘 및 접목 과수 묘목 생산에 돌입하여 전국적 수요망을 구축하였다. 이어 1965년에는 정부의 치산녹화7개년계획 수립 과정에서 하양묘목단지 일대가 소나무·오리목·낙엽송 등 대규모 산림녹화 수종 묘목 지구로 선정되어 종묘 및 어린나무를 정부에 납품하게 되었다. 이어 1968년 경상북도육묘장[1969년 11월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으로 이전하였으며, 현재의 명칭은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임]의 설립은 경산 지역이 전국 최대의 묘목 생산 단지로 발돋움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양읍과 진량읍 일대는 과수 묘목을 체계적으로 생산·공급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화훼·조경수·유실수 등 다양한 품목을 개발하여 전국 묘목 시장을 석권하였다.
2002년 경산시는 경산 묘목의 입지를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제1회 경산하양묘목축제를 개최하였다. 이어 2007년 4월 20일 재정경제부 고시[제2007-20호]로 경산 묘목 생산지 전역이 ‘경산종묘산업특구’로 지정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경산종묘산업특구는 하양읍과 진량읍 7개 리[하양읍 대조리·환상리·금락리, 진량읍 보인리·부기리·봉회리·북리] 일원 415㏊[2,570필지]에 지정되었으며, 2007년부터 우량종묘생산단지[406㏊] 육성, 종묘기술개발센터 및 종묘유통센터 건립, 경산 종묘 브랜드 홍보 등의 사업을 진행하여 왔다.
[묘목 생산 농가의 사계(四季)]
경부고속도로 경산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영남대학교 방향으로 2㎞ 정도 달리며 주위를 살펴보면, 길 양쪽이 모두 ‘농원’, ‘농장’, ‘영농 법인’ 간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잠시 뒤 ‘호산대학교’ 안내판을 따라 환상리 쪽으로 접어들면, 잘 닦인 도로와 함께 ‘경산종묘산업특구’임을 알리는 입간판, 아치, 각종 농장 표지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경산종묘산업특구 내 경산종묘유통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원용석 회장[67세]은 1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농사일을 배워 지금까지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며, 외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도 귀농하기를 바라는 성공한 농민이다. 원용석 회장은 차분하게 종묘산업단지의 역사에서부터 농사일을 배우던 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묘목 생산 농민의 사계요? 묘목 농사는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습니다. 묘목은 심어서 상품으로 나가기까지 4~5년 정도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 이 식재된 묘목들 보살펴야 하지, 음력설 지나고 땅이 녹는 2월 초순쯤, 절기로 따져 입춘쯤 되면 묘목 접붙이기가 시작되고 이때부터 묘목 판매도 시작되지요. 매년 2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식재 시기에 맞추어 묘목 판매상들이 몰려오고, 각종 묘목이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니… 이러니 글쎄, 땅이 완전히 얼어 있는 1월 한 달 정도나 쉴 수 있을까? 어쨌건 우리는 매일 아침 5시, 여름에는 4시에 밭으로 나와 일을 시작하고, 어두워져야 일을 마치는 생활을 일 년 내내 반복하고 있어요.”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하던 1970년대에는 사과나무 묘목 한 그루를 팔면 인근 땅 3평[약 9.09㎡]을 살 수 있었을 정도로 경기가 좋았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러면서 원용석 회장은 이러한 일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이곳에서 100년 정도 농사를 지어오다 보니 토질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걱정한다. “토질 개선 사업이 필요합니다.”
경산종묘유통센터 인근에 자리 잡은 한국종합종묘에서 만난 정동환 대표[66세]는 1960년대 말 종묘상으로 출발하여 농장 경영과 묘목 유통업을 겸하고 있는 농장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 예산, 경산 등지를 다니며 묘목 거간 일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묘목 판매는 수입이 좋은 업종이어서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서 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지요.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이 업종이 허가제로 바뀌고 묘목 판매업을 하려면 1,500평[약 4,959㎡] 이상 농지를 소유하고 종자업 등록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기는 바람에, 나도 25년 전쯤부터 이곳에 자리 잡아 ‘한국종합종묘’라는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지요.”
정동환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환상리 일대에 정착한 사람 중에는 이렇게 묘목 수요가 많은 충청남도 예산, 옥천 등지 과수원을 다니며 종묘상을 하다가 주저앉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언을 반증하듯 경산종묘산업특구 주변에는 수백 곳의 중간 판매 및 도매 묘목 판매상, 종묘 농원들이 밀집하여 있고, 매년 2월 중순에서 4월 하순이면 전국 최대 규모의 나무 시장이 열리며 사람과 묘목으로 북적이게 된다.
[경산종묘산업특구의 비상]
경산시는 전국 최초이자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경산 묘목 산업의 비상을 위해 농민들과 함께 2005년 경산과수종묘연합회[2008년 경산묘목조합으로 개칭]를 결성하고, 2010년 경산종묘사업클러스터사업단을 설립하여 경산종묘산업특구 활성화에 나섰다. 그 결과 종묘기술산업센터 설립과 운영, 종묘유통센터 건립과 운영, 종묘클러스터 인센티브 사업, 우량종묘생산단지 육성 등 경산 종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이 꾸준히 전개되어 오고 있다.
2010년 경산종묘사업클러스터사업단이 설립된 이후 2011년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경산시 하양읍 화성로 104-8]가 설립되었고, 2014년 경산종묘유통센터[경산시 하양읍 황새길 10]가 설립되었다. 경산종묘기술개발센터는 부지 면적 11,641㎡, 건축 연면적 1,187㎡ 규모이며, 과수 묘목 바이러스와 바이로이드 검정, 과수 무병묘 및 조직 배양묘 육성, 종묘 생산 품질 관리 지도, 육묘업 및 종자업 등록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경산종묘유통센터는 부지 면적 7,421㎡, 건축 연면적 1,931㎡이며, 저온저장고[661㎡], 선별장[823㎡] 사무실과 창고[447㎡], 묘목가식장[1,000㎡]을 갖추고 있다. 경산묘목영농조합법인[대표 정희진]이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경산 묘목의 선별과 집하, 저온 저장 등 종합적 유통 업무를 담당한다.
그 외에 경산종묘산업특구는 묘목문화마당, 묘목알림쉼터, 웰빙숲 조성, 역사관 건립 등을 통해 경산 종묘의 품질과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이제 경산시는 세계묘목박람회[가칭]를 유치하여 경산 묘목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희망을 내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