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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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官里 慶州 李氏 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Gyoungju Lee Clan in Singwa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신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한선 |
개설 시기/일시 | 16세기 말 - 신관리 경주 이씨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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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신관리 경주 이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신관리 |
성격 | 동성 마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신관리에 있는 경주 이씨 집성촌.
[개설]
신관리 경주 이씨 집성촌은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경주 이씨의 동성 마을이다. 신관리 경주 이씨는 경주 이씨 8대파 중 익재공파에 속한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은 중시조로부터 17세이며, 신관리 입향조인 묵헌(默軒) 이기업(李起業)은 27세이다. 신관리에는 둔재 이정완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와 효부각도 있다.
[명칭 유래]
경주 이씨 집성촌이 자리한 신관리에는 자연 마을이 2개인데, 웃관상과 아랫관상이다. ‘관상’이라는 말은 마을이 관아[자인현청] 위쪽에 자리한 데서 연유하였다. 두 마을 중 웃관상이 먼저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관상, 상관 등으로 불렸다. 아랫관상은 웃관상 아래에 새롭게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하관, 관신 등으로도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관이라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경주 이씨 집성촌이 자리한 신관리는 1450년(세종 32) 무렵 수원 백씨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경주 이씨의 경우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신관리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신관리 경주 이씨 주민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한 이기업을 입향조로 간주하는데, 신관리에 있는 경주 이씨 묘 중 가장 윗대의 묘가 이기업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관리 경주 이씨는 이기업의 호를 따서 묵헌공파라고도 한다.
[자연환경]
경주 이씨 집성촌이 자리한 신관리는 동쪽으로는 고죽리, 서쪽으로는 신도리, 북쪽으로는 읍천리와 진량읍 마곡리, 남쪽으로는 울옥리·옥천리와 접한다. 북동쪽으로 선암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금학산, 남동쪽으로는 삼락산이 있다. 신관리에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든 못이 있는데 신제, 만세지, 사제지이다. 그 외에도 작은 하천이 흐른다.
[현황]
신관리 경주 이씨 집성촌에는 1934년 당시 경주 이씨 46호가 거주하였다고 한다[당시 행정 구역은 신관동]. 1993년 조사 때는 신관리에 총 65호가 거주하였는데, 경주 이씨 48호, 타성 17호였다. 또 경주 이씨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총 85호 중에 75호 정도가 경주 이씨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약 80호 중 80% 정도가 경주 이씨였다는 증언도 있다. 전체 호수가 줄어든 현재[2020년]에도 약 63호 중 80%가 경주 이씨라고 한다. 타성으로는 수원 백씨, 영천 이씨 등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