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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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景胤 |
영어공식명칭 | Heo Gyeongyun |
이칭/별칭 | 윤승(允承),지재(篪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66년 - 허경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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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허경윤 임진왜란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허경윤 선무원종공신 녹훈 |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허경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56년 - 상의정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74년 - 임진 창의 제공 하양사적비 건립 |
거주|이주지 | 허경윤 이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묘소 | 허경윤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수문장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개설]
허경윤(許景胤)[1566~1627]은 임진왜란 때 하양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가계]
허경윤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윤승(允承), 호는 지재(篪齋)이다. 아버지는 허순(許珣), 어머니는 신목(申穆)의 딸 적성신씨(積城申氏), 할아버지는 허국창(許國昌), 증조할아버지는 허인(許仁), 부인은 김수륜(金守倫)의 딸 의인(宜仁) 청도 김씨(淸道金氏)이다.
[활동 사항]
허경윤은 하양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두터웠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허대윤(許大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하양 의병장 신해(申海)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했으며, 양친이 돌아 가셨을 때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좇아 상을 치렀다고 한다. 관직은 적순부위(迪順副尉) 수문장(守門將)에 올랐다.
[묘소]
허경윤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성산(城山)에 있다. 묘갈은 이호대(李好大)[1901~1981]가 썼다.
[상훈과 추모]
허경윤은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956년 후손들이 허대윤·허경윤 형제의 행적을 기리고자 상의정(尙義亭)[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을 건립하였다. 1974년에는 하양 출신 의병장 8인을 기리는 임진창의제공하양사적비(壬辰倡義諸公河陽事跡碑)[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133]가 세워졌다. 이 비석은 ‘하양팔의사비(河陽八義士碑)’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허경윤을 비롯해 신해(申海)·황경림(黃慶霖)·김거(金鐻)·허대윤(許大胤)·박능정(朴能精)·박붕(朴鵬)·허응길(許應吉)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