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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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東相 |
영어공식명칭 | Heo Dongsang |
이칭/별칭 | 허동훈(許東薰),화중(和重),춘정(春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908년 7월 6일 - 허동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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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허동상 학생 항일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4월 8일 - 허동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허동상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4년 3월 1일 - 춘정허동상의사기적비 건립 |
출생지 | 허동상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07 |
거주|이주지 | 허동상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07 |
활동지 | 허동상 활동지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훈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허동상(許東相)[1908~1951]은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대구에서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허동상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화중(和重), 호는 춘정(春庭), 이명은 허동훈(許東薰)이다.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의 20대 손이다. 1908년 7월 6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07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허동상은 18세에 족숙(族叔) 허병률(許秉律)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도왔다. 이후 하양서당(河陽書堂) 훈장으로 있던 허동상은 1929년 11월 전라남도 나주(羅州)와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학생항일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허동상은 최한영(崔漢永) 등과 함께 1930년 1월 10일 자신의 집에서 대구의 각급 학교로 보낼 격문(檄文)을 작성하였다. 이렇게 작성한 격문을 1930년 1월 14일과 15일 새벽 사이 대구고등보통학교·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대구상업학교의 학교 담장에 붙이고, 알고 지내던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각 학교에 살포하였다. 이 일로 여러 학생들이 구속되었고, 허동상도 1930년 1월 18일 체포되었다. 허동상은 대구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한 뒤, 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고 후유증을 오랫동안 겪다가 1951년 4월 8일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허동상은 199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 1994년 3월 1일 춘정허동상의사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각계의 성금을 모아 춘정허동상의사기적비(春庭許東相義士紀蹟碑)[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75-1]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