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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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陽鄕校 |
영어공식명칭 | Haya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20길 12-5[교리 15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8년 - 하양향교 대성전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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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22년 - 하양향교 명륜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10년 - 하양향교 대성전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98년 - 하양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1년 - 하양향교 대성전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22년 - 하양향교 양사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42년 - 하양향교 동·서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0년 - 하양향교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2년 - 하양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9년 - 하양향교 대성전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7년 - 하양향교 강학소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2년 - 하양향교 기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6년 - 하양향교 대성전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하양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7호 지정 |
현 소재지 | 하양향교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20길 12-5[교리 158] |
성격 | 향교 |
양식 | 맞배지붕[대성전]|맞배지붕[내삼문]|맞배지붕[명륜당]|맞배지붕[동재]|맞배지붕[서재]|맞배지붕[외삼문]|맞배지붕[전사청]|맞배지붕[제기고]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3칸[내삼문]|5칸[명륜당]|4칸[동재]|4칸[서재]|3칸[외삼문]|3[전사청]3|[제기고] |
측면 칸수 | 3칸[대성전]|1칸[내삼문]|2칸[명륜당]|1칸[동재]|1칸[서재]|1칸[외삼문]|1[전사청]|1[제기고] |
소유자 | 경상북도향교재단 |
관리자 | 하양향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7호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학 교육 기관.
[개설]
하양향교(河陽鄕校)는 조선 시대 경상도 하양현(河陽縣)에 두었던 공립 교육 기관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을 갖추고 있다.
[위치]
하양여자중학교 옆을 지나는 지방도 제919호를 따라 남쪽으로 600m 가량 떨어진 도로 우측 지점에 ‘한사리 교리 500m’라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이 가리키는 방면으로 1㎞ 정도 이동하면 경산시 하양읍 교리 마을이 나온다. 하양향교는 마을 북쪽의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변천]
하양향교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조선 전기 정승을 지낸 허조(許稠)[1369~1439]가 배출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현의 서쪽 3리에 향교가 있다고 한 기록 등을 미루어 볼 때, 적어도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6년 대성전을 중수할 때 ‘만력 37년 무신 3월 15일 영건 상량(萬曆三十七年戊申三月十五日營建上樑)’이라 적혀 있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만력 37년은 1608년(선조 41)인데, 1601년(선조 34) 대구부에 합속되었던 하양현(河陽縣)이 7년 만에 복현(復縣)된 해이다. 임진왜란으로 하양현이 쇠퇴하면서 향교가 퇴락하였다가, 1608년에 새롭게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1622년(광해군 14)에 명륜당을 중건하였고, 1710년(숙종 36)에 대성전을 중창하였으며, 1798년(정조 22)에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801년(순조 1)에 대성전을, 1804년(순조 4)에 묘우 및 당재(堂齋)를 보수하였으며, 1814년(순조 14)에는 주고(酒庫)를 중수하였다. 1819년(순조 19)에는 하양현감 김원명(金元明)이 학전(學田)을 마련하여 양사재(養士齋)에 붙였다. 1822년(순조 22)에 성묘(聖廟)와 양사재를 중수하였고, 1842년(헌종 8)에 동·서재를 중수하였다. 1860년(철종 11)에 향교를 중창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명륜당 중수, 1889년(고종 26)에 대성전 중건, 1897년(광무 1)에 강학소(講學所) 중수, 1902년(광무 6)에 기로당(耆老堂) 중수, 1920년에 성묘 중수를 차례로 진행하였다. 이후 1976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형태]
하양향교는 입구에서부터 외삼문·명륜당·내삼문·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다. 경내에는 전사청(典祀廳)·기물고(器物庫)·관리사 등이 남아 있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에 대청을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中堂挾室)형 평면 구조이다. 중대공의 구성을 보면, 다른 향교에서는 찾기 어려운 조각 부재를 결합하여 사용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일반적인 향교와 달리 명륜당 뒤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조는 경상도에서 문경향교와 하양향교에서만 취하고 있다. 동재와 서재 모두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동재와 서재 뒤에 위치한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사청과 기물고가 양 옆에 위치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 마루는 쪽마루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전면 어칸에 놓인 계단은 원래의 계단채로 다른 석구조물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 정면 동쪽에 위치한 전사청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성전 정면 서쪽에 위치한 제기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대성전의 동쪽과 서쪽에는 동무와 서무가 있어야 하나, 하양향교의 경우 동·서무 대신 전사청과 제기고를 둔 것이 특이하다.
[현황]
하양향교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거행한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동국18현(東國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도 하양향교는 하양 지역 유림 및 어르신을 모시는 기로연(耆老宴)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한편, 하양향교에는 조선 후기 향교의 인적 구성과 운영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하양향교청금록(河陽鄕校靑衿錄)」, 「하양향교임사안(河陽鄕校任事案)」, 「성묘중수시기략(聖廟重修時記略)」, 「성묘중수시용기(聖廟重修時用記)」, 「통문(通文)」, 「하양현감서목(河陽縣監書目)」, 「향교각양규정절목(鄕校各樣規定節目)」, 「하양환성사결송(河陽環城寺決訟)」 등의 성책 및 고문서 자료가 전한다.
[의의와 평가]
하양향교는 조선 시대 하양 지역 교육 및 교화의 중심지였다. 이와 관련하여 하양향교에는 17세기 이후 작성된 여러 전적 자료가 남아 있어, 이 시기 하양 지역 재지사족(在地士族)의 동향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유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