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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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穴-金泊山 |
이칭/별칭 | 현내리 금학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현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은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 「혈이 끊긴 금박산」 『경산문화유적총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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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혈이 끊긴 금박산」 최일호로부터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5년 - 「혈이 끊긴 금박산」 「현내리 금학산」이라는 제목으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
관련 지명 | 금박산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현내리|용성면 고죽리 |
채록지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현내리 |
성격 | 지명 유래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여송 |
모티프 유형 | 이여송의 명산 혈 끊기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현내리에서 금박산의 내력과 지명 유래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혈이 끊긴 금박산」은 금박산(金泊山)의 봉우리가 학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금학산’으로 불리다 ‘금박산’으로 이름이 바뀐 내력을 설명하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전국 명산의 혈을 끊었다는 인물 전설과 결합하여 함께 전한다. 이여송에 의해 혈이 끊겨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혈이 끊긴 금박산」 설화는 금박산이 인물이 날 만한 명산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날씨가 가물 때 금박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금박산이 지역민들에게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경산문화원에서 간행한 『경산문화유적총람』을 비롯해, 2002년 간행된 『경산의 전설과 민담』, 2005년 간행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도 같은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는 「현내리 금학산」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2002년 진량읍 현내리 주민 최일호[남, 당시 73세]으로부터 채록했다고 한다.
[내용]
금박산은 영천시 대창면과 경산시 진량읍, 용성면 등 2개 시 3개 면의 경계에 있다. 산봉우리가 마치 학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금학산(金鶴山)’이라고도 불렀으나 후에 ‘금박산(金泊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산봉이 학의 머리와 같아서 산 아래에 비석을 세우거나 지붕에 기와를 이을 경우 학의 머리가 무거워져서 마을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지금도 이 산 아래에는 비석을 세우지 않으나, 새마을 운동 이후 초가지붕은 모두 슬레이트나 기와로 개량되었다. 날씨가 가물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 장수 이여송이 원군을 이끌고 내려왔다. 이여송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살펴본 결과 많은 장수가 태어날 형상이라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전국 명산에 붓으로 혈(穴)을 끊었다 한다. 이때 금박산도 혈이 끊겨 이 산 아래에는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지금도 혈이 끊긴 자리가 남아 4~5m 정도씩 산 중턱이 끊겨 있다. 이곳은 현재 금박산에 오르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모티프 분석]
「혈이 끊긴 금박산」의 주요 모티프는 ‘이여송의 명산 혈 끊기’이다. 이여송은 명나라 장수로 임진왜란 때 원군을 이끌고 내려온 인물이다. 이여송에 대해서는 전국 명산을 다니며 정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거나 붓으로 혈을 끊어 인물을 날 것을 막았다고 하는 전설과 어리석은 인물로 그려지는 전설 등이 있다. 이여송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산천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대한 적개심을 동시에 드러내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이여송 전설은 경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에서 건너와서 귀화하고 벼슬을 얻은 호종단이라는 사람이 문화재를 파괴하고 산천의 정기를 훼손하는 기이한 행동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전승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 때문에 겪어온 정신적인 침해를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흥미와 충격을 갖추어 주장했는데, 이여송 관련 전설은 이러한 설화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