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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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溪 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상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19년 - 정경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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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94년 - 정경륜 사망 |
본관 | 초계 -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
입향지 | 등곡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천등리 |
세거|집성지 | 초계 정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송산면 천등리|송산면 지화리 |
성씨 시조 | 정배걸 |
입향 시조 | 정경륜 |
[정의]
정배걸을 시조로 하고 정경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초계 정씨 시조는 고려 전기 인물인 정배걸(鄭倍傑)이다. 1080년(문종 34)에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수태위(守太尉)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광유후(光儒侯)에 추증되었으며, 홍문(弘文)이란 시호를 받았다. 초계 정씨는 내급사공파(內給事公派), 천호장공파(千戶長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등으로 분파하였는데, 화성 지역에는 주로 천호장공파 계열이 정착하였다. 화성 지역 정착 이후에는 다시 감역공파, 송죽당공파, 만주공파 등으로 분화하였다.
화성 지역 초계 정씨 가운데 주목할만한 인물로는 정시망(鄭時望)[1586~1662]이 있다. 정시망은 성균관 장의(掌議)[조선 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자치 기구인 재회(齋會)의 임원]로서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려 대북파 영수 이이첨(李爾瞻)의 잘못을 비판하였고, 관직에 나아가서는 소북계 정치인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화성 지역 초계 정씨들은 소북에 속하게 되었다. 정시망의 아들 정창주(鄭昌冑)[1606~?]는 승지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문장이 뛰어나 북인 8문장가에 꼽히기도 하였다. 또 정창주의 8세손인 정윤영(鄭胤永)[1833~1898]은 1881년 척사만인소(斥邪萬人疏) 작성을 주도한 화성 지역 주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입향 경위]
초계 정씨 화성 지역 입향조는 정경륜(鄭景倫)[1519~1594]이다. 정경륜은 생원시에 합격한 후 군수와 한성부 서윤 등을 지냈고, 남양부 등곡(登谷)[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천등리]에 묻혔다. 아들로는 생원시에 합격한 정응탁(鄭應鐸), 손자로는 정문박(鄭文愽)·정문명(鄭文明)·정문익(鄭文翼)이 있다. 정문박의 후손은 송산면 천등리에, 정문명의 후손은 송산면 마산리에, 정문익의 후손은 송산면 중송리와 지화리에 자리 잡았다.
[현황]
초계 정씨 화성 지역 동성 마을은 1930년대에 서신면 궁평리[70세대]가 보고된 바 있고, 1950년대에는 궁평리[67세대] 외에 송산면 지화리[24세대]와 천등리[44세대]가 추가로 보고되었다. 이외에 송산면 마산리와 중송리에도 초계 정씨 거주 사실이 확인된다.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모두 208세대 863명의 초계 정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1,552명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