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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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鍾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출생 시기/일시 | 1867년 12월 6일 - 안종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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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5일 - 안종린 향남읍 발안리 장날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안종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안종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제암리 학살 사건 |
출생지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옛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천도교 수원교구 순회교사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가계]
[활동 사항]
안종린(安鍾麟)[1867~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10년에는 천도교 수원교구 순회교사로서 수원과 화성 지역 천도교 포교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안종린은 3월 10일에 독립선언문과 각종 격문을 입수하였다. 안종환(安鍾煥)과 수원면 북수리 천도교당에서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를 하였으나, 3월 16일 일본군에 피습당하여 부상을 입었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상당한 몸이었지만, 안종린은 3월 25일에 안종환·안정옥(安政玉)·안종락(安鍾樂)·안종엽(安鍾燁)·안종후(安鍾厚)·안진순(安珍淳)·안필순(安弼淳) 등과 함께 향남면 발안리에서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리 장날에 다시 한 번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일제는 화성 지역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무차별 방화와 학살, 고문 등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이게 한 뒤 집중사격을 명령하였고, 이때 2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안종린 역시 아들 안무순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