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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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淳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5일 - 홍순진 향남면 발안리 독립만세시위 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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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홍순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홍순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제암리사건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순진(洪淳晋)[?~1919]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안상용(安相容)·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일으켰다. 홍순진은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를 향하여 행진하였으며 일본 경찰과 충돌하였다.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분노한 시위 군중은 돌을 투척하며 대항하였다. 이에 수원군 일대는 일본 경찰과 헌병대가 대량으로 증파되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보병부대는 발안 장에서 일어난 시위를 해산시키고 2㎢ 떨어진 제암리로 가서 주민을 참살하고 마을에 불을 질러 기독교예배당과 천도교 교회당을 포함한 가옥 28채를 불태웠다. 또한 일본군 보병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 이하 보병 11명은 경찰관과 협력하여 군중을 해산하고 홍순진을 포함한 20여 명의 주민을 교회당에 소집하였다. 아라타 중위는 이들에게 훈계를 한 후 교회당을 나갔으며, 입구에 있는 병사들이 교회당에 총을 발사하고 방화하였다. 홍순진은 1919년 4월 15일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묘소]
제암리사건을 목격한 생존자 전동례(田同禮)와 김순이(金順伊)의 증언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해를 거두어 발안 장터 뒷산에 묻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