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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231
한자 松坍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인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남도 동복군 외북면 송단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32년 -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로 개편
지명 송단리 -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1.51㎢
가구수 74가구
인구[남,여] 141명[남자 69명, 여자 72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북면 송단리는 자연 마을인 송단·강예·평지·흑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흑석 마을은 1950년 6·25 전쟁으로 폐촌이 되었다.

[명칭 유래]

송단 마을은 원래 솔단이라 하였는데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 ‘솔단’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송단(松壇)’이라 표기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송단(松坍)’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강예 마을은 압해 정씨 정호민(丁好敏)[1598~1678]이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하였다가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후 돌아와 이곳에 머물면서 선비들과 벗에게 예를 강의한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평지 마을은 산골짜기인데도 주변이 평평하다 하여 ‘평지’라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동복현 외북면(外北面) 송단리(松壇里)로 나오며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전라남도 동복군 외북면 송단리(松坍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전라남도 화순군 외북면 송단리(松坍里)로 개편[강예 마을·평지 마을·흑석 마을·송단 마을 일부]되고 1932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외북면과 내북면을 합하여 북면으로 고치면서 화순군 북면 송단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송단리화순군 북면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송단 마을의 남쪽으로는 백아산(白鵝山)[810m]의 산등이 뻗어와 있으며 동쪽과 서쪽은 동복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데 내를 중심으로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강예 마을 역시 남쪽으로 백아산의 산등이 뻗고 동쪽과 서쪽은 동복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며, 하천을 중심으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서당골과 강적굴이 있다.

평지 마을은 남쪽으로 백아산의 산등이 뻗어와 있으며 동쪽에 돌곳봉과 송치가 있다. 남쪽으로는 각시 바위과 매봉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깃대봉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동쪽과 남쪽에서 내가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강예 마을 앞에 이른다. 내와 골짜기를 중심으로 약간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거주할 때는 재석굴·흙구댕이·평지에 나뉘어 살았다.

[현황]

2012년 현재 총 11.51㎢의 면적에 74가구 141명[남자 69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동쪽으로 수산리, 서쪽으로 원리, 남쪽으로 노치리, 북쪽으로 방리와 접하고 있다. 송단리는 1구(區)[송단 마을]와 2구[강예 마을·평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주산물과 주 소득원은 벼이다. 송단 마을의 특산물은 복조리와 산채이며, 강예 마을과 평지 마을의 특산물은 불미나리이다. 원리로 연결되는 도로가 마을을 지난다. 문화 유적으로는 송단 마을에 송단 2교, 송단 목장, 은적굴 절터, 기우제 터, 서당 터 등이 있으며, 평지 마을에는 위령비, 광산 김씨 제각, 짐대 터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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