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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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이영문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석기를 사용하던 시대.
[개설]
고고학에서는 인류의 발달을 생활 도구의 주된 재료를 기준으로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로 구분한다. 또한 문자 기록의 유무에 따라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 시대라 하고 문자의 발명과 사용 이후부터는 역사 시대로 구분한다.
석기 시대는 다시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한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한 신석기 시대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석기가 실생활 도구로 주로 사용되는 청동기 시대를 선사 시대에 포함하기도 한다. 화순 지역의 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만 확인되었으며, 간석기는 청동기 시대에 활발하게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화순의 구석기 시대]
화순 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동복천과 지석천 일대에서 발견된 30여 곳이다. 이들 유적 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유적은 남면 대전 유적, 한천면 도산 유적, 춘양면 사창 유적이다. 대전 유적은 고인돌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인돌 문화층 아래에서 후기 구석기 최말기, 후기 구석기, 중기 구석기 시대의 3개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후기 구석기 시대 동북아시아의 전형적인 유물인 배 모양 석기, 좀돌날 몸돌[Micro-blade Cores]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도산 유적에서는 모두 4개의 유물층이 확인되었다. 제1 유물층은 석기 제작 터로 추정되고, 제 4 유물층에서는 후기 구석기 문화의 특징인 좀돌날 몸돌과 돌날 몸돌이 발견되었다. 석기의 재질은 대부분 석영제이며, 대부분의 석기가 거친 양상이다.
사창 유적은 발굴 조사 결과 3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제1 문화층의 경우 중기 구석기~후기 구석기 시대 전환기이고, 제2 문화층은 후기 구석기 시대 전기, 제3 문화층은 후기 구석기 시대 후기로 편년된다. 영산강 유역의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의 전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순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광여기 루미네선스 연대 측정[OSL(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만 년에서 5만 년 전 사이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화순의 신석기 시대]
화순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조사된 바 없다. 하지만 화순 지역과 인접해 있는 광주광역시의 노대동 유적과 전라남도 보성군의 죽산리 유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화순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영산강 유역에 위치한 노대동 유적은 칠구재를 경계로 화순 지역과 경계를 이룬다. 신석기 시대 수혈 유구 3기와 적석 유구 1기에서 사격자문·점열문 토기·이중 구연 단사선문 토기 등 빗살무늬토기와 돌창·돌도끼 등 석기가 출토되었다.
보성강 유역에 위치한 죽산리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복교리에 있는 집자리 유적과 강안 충적 평지로 연결된다. 죽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유물은 빗살무늬토기편 8점과 석제 그물추이다. 빗살무늬토기는 사질토 2점과 무문토기 태토와 같은 사립이 섞인 것 6점이다. 무늬는 평행사선문·삼각집선문·압인문 등인데 모두 단일한 문양을 새겼다. 죽산리 유적은 생활 유적이며 화순 지역에서도 이 같은 유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의와 평가]
화순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보성강과 영산강 하천변의 구릉 지대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주로 구석기 후기에 속한 것이 많지만 한천면의 도산 유적은 석기 제작 기법과 문화층의 지층 위치를 고려할 때 중기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어 영산강 유역에서는 빠른 시기에 해당한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로 보아 화순군 경내에도 신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할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