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068 |
---|---|
한자 | 漢文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김대현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한문 작품으로, 화순 출신 또는 화순에 우거한 한문학자에 의해 지어진 글.
[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은 전통 문화 유산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문학과 예술의 고향이다. 화순을 배경으로 일찍부터 수많은 한문학 작품들이 나타났으며 특히 문학이 발달하였다. 화순은 일찍이 능화복(綾和福)이라 하여 전라남도 능주면과 전라남도 화순읍, 전라남도 동복면을 화순의 중요한 세 지역으로 부르곤 하였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산수 명소를 예찬하는 한문 작품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았으며, 많은 문인들이 나타나서 화순의 한문학을 융성하게 하였다.
[인물]
화순의 한문학은 화순 출신의 문학자들과 화순에 잠시 머물면서 작품을 남긴 문학인들의 모든 작품을 다 포함한다. 화순 출신의 작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그 가운데는 이름난 승려들도 여럿 있다. 고려 시대의 진각 국사(眞覺國師) 무의자(無衣子) 혜심(惠諶)[1178~1234]은 화순 출신의 스님이자 고려 시대 대표적인 승려 문인이었다. 시 「만연사」를 비롯하여, 『무의자 시집』에 많은 한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연담 선사(蓮潭禪師) 유일(有一)[1720~1799] 같은 이름난 승려 문인이 있었다. 화순군 화순읍 적천리 출신으로 불교 문학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최사로(崔士老) 등 여러 문인들의 시 창작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학포 양팽손은 중종 대의 사림파 문인으로, 많은 문학 활동을 하였다. 한편, 제주 양씨, 광산 김씨, 창녕 조씨, 여흥 민씨 가문을 비롯한 여러 가문의 문인들이 문집을 남기면서 화순의 문학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화순 출신의 조대중(曺大中)은 창녕 조씨로 문중의 여러 문인들과 함께 『오현문집』을 남기고 있어서 그 문학적인 성과를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최경회(崔慶會) 장군도 많은 한문학 작품을 남겼는데, 집안에는 여러 문인들이 많았다. 제주 양씨로는 학포 양팽손을 잇는 양진영, 여흥 민씨 문인으로서는 사애(沙厓) 민주현(閔冑顯) 등의 문학 활동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문인들과 아울러 석당 나경적(羅景績)이나 규남 하백원(河百源)과 같은 실학적 기풍을 지닌 문인들이 나타나서 화순의 다양한 문학 전통을 형성하였다.
화순 지역을 읊은 한시를 남긴 화순 출신 이외의 사람으로는 고려 시대의 김극기(金克己)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인들이 있다. 성임(成任), 김종직(金宗直), 박상(朴祥), 송구(宋駒), 조광조(趙光祖), 김인후(金麟厚), 김창협(金昌協), 정약용(丁若鏞) 등 이름난 문인들이 그들이다. 그 밖에 유배를 온 문인들에 의하여 문학 활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신재 최산두(崔山斗)는 동복으로 유배를 왔는데, 하서 김인후를 가르치는 등 화순의 유배 문학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한문 산문으로 이름을 날린 여러 문인들도 있다. 예를 들면 형극태(邢克泰), 송류(宋瑬), 배현규(裵鉉奎), 박장환(朴章煥), 박장현(朴璋炫) 등은 조선 후기에 이름을 남긴 문장가들이다. 근대에는 효당(曉堂) 김문옥(金文鈺)[1901~1960]이 남면 출신 한학자로 이름을 크게 남겼다.
[특징]
화순 지역의 문학 가운데 무엇보다 특기할 사항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대하여 노래한 문학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화순은 무등산(無等山)이나 적벽(赤壁) 등 이름난 명승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정의 건립이 매우 활발하였다.
일정한 지역 공간으로는 무등산을 비롯하여, 특히 적벽을 배경으로 한 문학 활동이 활발하였다. 「적벽 팔경」이라는 연작 한시를 지어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적벽에는 여러 누정들이 건립되어서, 문학 활동의 중요 공간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창원 정씨 여러 문인들의 활약이 중요하게 남아있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출신으로 창랑정을 지은 창원 정씨 창랑(滄浪) 정암수(丁巖壽)는 많은 누정 문학을 남기고 있는데, 문집 『창랑집』이 전하고 있다. 창랑정은 정철, 고경명 등 이름난 문인들의 제영 작품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당대 유명한 누정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 같은 창원 정씨 적송(赤松) 정지준(丁之雋)은 망미정(望美亭)을 짓고서, 누정 문학을 이어 나갔다. 후손인 용암(蓉巖) 정혁(丁爀)도 시문집을 남기고 있고, 또한 ‘적벽시사’를 이끌었던 지암(芝庵) 정만용(丁萬容) 등 창원 정씨의 문학적인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창녕 조씨 조수겸(曺守謙)은 부춘정(富春亭)을 지어서 많은 누정 문학을 남기게 하였다. 송석정을 지은 양인용(梁仁容)도 능주 출신으로 광해조의 혼탁한 정치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누정을 짓고 문학 활동을 하였다. 이와 함께 능주의 영벽정은 학포 양팽손, 일신재 정의림 등의 한시를 남기면서, 한문학의 주요 공간으로 발전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순의 한문학 정리는 아직 체계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춘곡 강동원(姜東元)에 의하여 『화순 시총(和順詩叢)』이 편찬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화순의 한문학 정리는 호남의 한문학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