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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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전동진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 혹은 화순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가 창작한 산문체 문학.
[개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소설 문학은 화순 지역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거나 화순 지역 작가가 사실적 경험을 문학적 허구로 드러낸 산문체 문학을 가리킨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화순의 운주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화순의 아동 문학은 나라의 미래가 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특히 화순 문학을 형성하고 이끈 이들은 대부분이 아동 문학 작가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소설 문학]
김신운 소설가는 1944년 화순군 도곡면에서 태어나 조선 대학교 교육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전남 일보』 장편 소설 모집에 「백령도」가 당선되고, 1975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무기」가 당선되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편 소설 「땅 끝에서 며칠을」과 「청동조서」를 발간하였으며, 창작집으로 『황혼의 마을』, 『낯선 고향』을 묶어 냈다. 대표작 선집으로 『부처님의 입술』이 있다. 전남 문학상과 화순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동강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허형권 소설가는 1957년 화순군에서 태어나 송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3년 『무등 일보』 신춘문예에 「기억의 틀」, 『광주 매일』 신춘문예에 「불빛 보기」가 동시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광주·전남 소설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문학 / 동화]
정영기 동화 작가는 1942년 화순군 도곡면에서 태어나 한국 방송 통신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기독교 아동 문학』에 동화가 당선됐고, 1988년에는 『월간 문학』에 동화, 1990년에는 월간 『아동 문학』에 소년 소설 「청소부와 새 사장님」이 당선되었다. 한국 아동 문학상, 한국 아동 문학 작가상, 전남 문학상, 전남 아동 문학상, 샛별 문학상, 화순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회원, 한국 문인 협회 회원, 한국 크리스챤 문학가 협회 이사, 한국 아동 문학 중앙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남 아동 문학 회장, 화순 문인 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동화집으로 『쌍무지개 뜨는 마을』, 『짱아 짱아 예쁜 짱아』, 『이상한 샘물』, 『흥부박 놀부박』, 『청소부와 새 사장님』,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 『세계 문화유산 고인돌의 전설』 등이 있다.
장문식 동화 작가는 1948년 화순군에서 태어나 광주 교육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교육 대학원 국어과를 수료했다. 1976년 『전남 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형제」가 당선되었으며, 1980년에는 『한국 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신기료 할아버지」가 당선되었다. 광주 문인 협회 회원, 흙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화집으로 『신기료 할아버지』, 『도둑 마을』, 『가슴마다 뜨는 별』, 『누나의 징검다리』, 『얼룩 귀뚜라미의 여행』, 『돈 항아리』 등이 있다.
이성교 동화 작가는 1950년 화순군 도곡면에서 태어나 한국 방송 통신 대학을 졸업했다. 1992년 월간 『아동 문학』에 「쌍고라니의 슬픔」이, 1993년 『크리스쳔 문학』에 동화 「철민의 고민」이 당선되었다. 한국 문인 협회 회원, 한국 아동 문학회 회원, 전남 아동 문학회 회원, 전남 문인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인숙 동화 작가는 화순군에서 태어나 한국 방송 통신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단국 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문학 춘추』에 동화 「금붕어의 기도」가, 『아동 문학 평론』에 동화 「반짝이」가 당선되었다. 한국 문인 협회 회원, 광주·전남 아동 문학회, 금초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
화순 운주사가 세상 사람들의 입게 자주 오르게 된 것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부터일 것이다. 운주사 창건 설화를 소설적으로 구성하여 대하 장편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닭이 울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북채를 내던졌다. 미륵을 밀어 올리던 사람들도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미륵상은 비탈 저 밑에 처박혀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새까맣게 몰려오던 사방의 바위들도 소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 넘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넘어지면서도 머리는 계곡 쪽을 향하였으니 먼 훗날에라도 와불이 바로 일어서면 다시 미륵이 되기 위해서였다. 바위들은 민병의 쓰러진 시체처럼 들판과 야산의 곳곳에 넘어져서 오랜 비바람에 씻겼다.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운주사의 대문을 여닫을 적마다 서울 장안에서 우지끈대는 우뢰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서울이 옮겨지지 않은 것을 한하여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래서 대문을 떼어서 영산강으로 떠나보냈다. 운주사는 그 뒤로부터 운주사(雲住寺)가 되고 말았으며 이는 물이 차오르지 않아 세상이 머물러 버린 까닭이라고 하였다. 중생의 물이 차올라 세상인 배를 띄울 때까지 와불은 구렁에 처박힌 채 기다림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 - 황석영의 『장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