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37 |
---|---|
한자 | 鎭川縣 |
영어음역 | Jincheon-hyeon |
영어의미역 | Jincheon county |
이칭/별칭 | 상산(常山),진주(鎭州),만노군(萬弩郡),창의현(彰義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전호수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개설]
진천현(鎭川縣)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전국적으로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하면서 폐지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1413년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邑格)을 각 군현의 호구(戶口) 및 전결수(田結數)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또한 대몽전쟁(對蒙戰爭) 이후 감무제(監務制)의 발달과 민중의 성장을 발전적으로 수렴하여 속현이나 향·소·부곡 등 차별적인 대우를 받던 행정단위를 해소하고, 전국적으로 8도관찰사제(八道觀察使制)에 입각한 일원적인 군현조직을 창출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지방 통치체계의 측면에서 농업생산에 바탕한 유교적인 중앙집권 국가의 하부적 기반을 완비해나가기 위한 제도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고려 초기 이래 제정되어 조선왕조의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던 충청북도 진천군 지역의 명칭이었던 ‘진주(鎭州)’라는 명칭에 대신하여 읍격(邑格)이 현(縣)으로 조정됨에 따라서, 수령이 부사(府使)[도호부사의 약칭, 종3품] 이하인 군현은 ‘칭주(稱州)’할 수 없다는 규정에 의거하여 ‘진천(鎭川)’으로 읍호(邑號)[군현의 명칭]가 바뀌었다.
[변천]
조선시대 전 기간에 읍호 및 읍격에 변동이 없었으며, 다만 1505년(연산군 11) 그 관할 감영을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하였다가, 중종 초에 복귀시켰다. 1895년(고종 32) 갑오경장에 의한 근대적 제도개혁 조치에 따라 ‘진천현’에서 ‘진천군’으로 개편되었다.
[현황]
2009년 현재도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단위 등급의 명호는 ‘군(郡)’이지만 오늘날의 ‘군’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가장 일반적인 행정단위였던 ‘현’과 마찬가지로 대외적 독립성을 갖는 기본적인 자치단위의 명칭이라는 점에서, 1895년 ‘진천현에서 진천군으로’의 명호 변경은 하나의 제도적 개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당대의 의미로서는 진천 지역이 읍세(邑勢), 즉 인구 및 경제규모 등에 걸맞는 객관적인 행정등급으로서 ‘진천현’의 명칭을 갖게 되어, 하나의 독립적인 행정단위로서 법률적·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즉, 진천이라는 명칭 자체는 고려 태조에 의해 제정된 ‘진주(鎭州)’라는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주는 현종 때 청주목에 내속했다가 무신집권기 임연(林衍) 정권 시절 임연의 내향(內鄕)이라하여 ‘창의현(彰義顯)’을 설치하고. 원종 때 또 지의령군사(知義寧郡事)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임연의 죽음과 함께 진주로 강등된 데에서 보듯 제도적 안정성을 갖지 못하였다. 한편 진천현은 오늘날 충청북도 진천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 조선 건국 초기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제정된 ‘진천현’에서 기원된 것이라는 점에 그 현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