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16 |
---|---|
한자 | 鎭川李相卨生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이상설안길 1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연승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3월 31일 - 진천 이상설 생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 이상설 생가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가옥 |
양식 | 겹집 |
건립시기/일시 | 1870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이상설안길 10]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개설]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위치]
진천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이상설안길 10]에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진천 나들목에서 좌회전하여 증평 방향으로 다시 좌회전하여 국도 21호선을 따라 3㎞쯤 가면 왼쪽으로 이정표가 보이며, 여기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2㎞쯤 가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진천읍에서 초평 방면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 약 3㎞쯤 가면 도로 왼편으로 ‘이상설 생가 입구’라는 푯말이 나온다. 이곳에서 하차하여 포장도로를 따라 2㎞쯤 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진천읍에서 초평 방면으로 약 3㎞를 간 뒤 왼쪽으로 2㎞를 가면 된다.
[변천]
진천 이상설 생가는 1955년을 전후하여 무너졌다가, 근년에 두 번의 복원 공사를 하였다. 1988년 목조가구식 구조로 복원되어 원형이 훼손되었다는 주장에 따라 1998년 고증을 통해 본채와 헛간채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형태]
진천 이상설 생가는 정남향의 본채와 마당을 사이로 본채와 마주보고 있는 헛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토담집이며, 부엌, 안방, 윗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윗방의 전면에는 반 칸 크기로 토광이 돌출되어 있다. 툇간의 봉당은 흙바닥이며, 방으로 출입하기 위한 디딤돌이 있다.
부엌은 안방, 윗방보다 반 칸 정도 돌출한 형태로 문이 없이 거적문을 달았다. 안방 쪽으로는 부뚜막을 두고 그 위로 부뚜막을 설치하였다. 안방과 윗방 사이에는 여닫이문을 달아 서로 통하게 만들었다. 윗방 앞의 토광은 벼를 저장하는 용도로 만든 공간이다. 본채의 정면에는 측간과 잿간, 헛간으로 구성된 헛간채가 있다.
[현황]
진천 이상설 생가는 1987년 3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관리는 진천군에서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천 이상설 생가는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상설이 태어난 곳으로,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에서 세상을 떠난 이상설의 독립 활동을 알리고 공훈을 길이 기억하기 위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