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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린 가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479
한자 -家屋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38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옥
양식 민도리집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1973년 재건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사랑채]
측면칸수 2칸[사랑채]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385 지도보기
소유자 이창선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증평 방향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면 지전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지전교 방향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면 양촌마을 입구가 나온다. 이상린 가옥은 이 양촌마을의 중심부 경사지에 위치한다.

[변천]

이상린 가옥이 언제 처음으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전(家傳)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황해감사를 지낸 이인병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보다 사랑채의 건립 연대가 더 오래되었다. 안채는 종도리에 기록된 ‘서기일구칠삼년계축삼월일구일오시입주상량(西紀一九七三年癸丑三月一九一午時立柱上樑)’이라는 상량문을 통해 1973년 구재(舊材)를 사용하여 재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재건하기 이전 안채의 평면 구성은 대청을 중심으로 북측에는 나뭇간, 부엌, 안방, 찬방이 있었고 안방과 찬방 사이에는 장지문을 둔 방이 있었으며 남측에는 건넌방과 새 며느리를 위한 모방[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안방, 가운데방, 찬방이 안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남측에 있던 모방은 없어지고 주방으로 사용되는 건넌방만 남아 있다.

[형태]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콘크리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사각의 방주를 세웠다. 지붕가구는 단순한 3량가로 처리하였는데, 전후의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상부에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사랑채의 평면 구성은 일자형으로 광과 중문, 방으로 구성되며, 전면에 툇간을 구성하였다. 방은 아랫방과 윗방의 구분이 있었으나 현재는 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사랑채의 구조는 안채와 마찬가지로 시멘트로 마감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하였다. 지붕가구는 전후 중도리 사이에 서까래를 수평으로 건 평4량가 구조이다. 지붕은 홑처마 우진각 지붕으로 건립 당시에는 기와집이었다가 이후 초가지붕으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다시 바뀌었다.

[현황]

이상린 가옥은 외부로 드러나는 기둥과 서까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다. 기단과 벽체 및 기와까지 시멘트로 덮여 있어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의 측면에 증축된 부분이 많고, 창호는 대부분 현대적인 창호 시설로 교체되었다. 현재 이창선이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상린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재들의 상태 및 가구 기법, 공간 구성 등을 통해 전통적인 주거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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