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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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賴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산 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호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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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 |
건립시기/일시 | 1851년|1961년 중건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5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 산 81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있는 조감의 위패를 모신 사당.
[개설]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인 조감(趙瑊)은 만노성에서 유창국(柳昌國)과 더불어 통솔자가 없어 방황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만노성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조감은 사후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랐다. 만뢰사(萬賴祠)에 조감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 공적을 후손이 기리도록 하고 있다.
[위치]
진천군청에서 백곡천을 따라 국도 34호선을 14㎞ 정도 직진하면 왼쪽에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이 보인다. 왼쪽 방향의 백곡로 420번 길을 따라 강당골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을 기준으로 오른쪽 45도 방면 강당마을 뒷산 기슭에 만뢰사가 위치해 있다.
[변천]
1851년(철종 2) 백곡면 가죽리에 죽계사(竹溪祠)를 세워 김유신(金庾信)과 함께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고종 때의 서원철폐령으로 죽계사가 철거되면서 배향을 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인 1949년 진천 길상사(吉祥祠)에서 다시 조감을 배향하였다가, 1961년 후손들과 지방 유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새로 만뢰사를 건립하여 조감을 배향하게 되었다.
[형태]
만뢰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만뢰사에는 ‘만뢰사(萬賴祠)’라는 편액이 달려 있으며, 반 칸의 앞퇴를 두고 있다. 정면에는 맞배지붕형 삼문을 세웠으며, 그 주위로 돌과 흙을 섞은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어 놓았다.
[현황]
만뢰사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어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다만 들어가는 도로가 비좁아 자가용으로 접근하기는 다소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