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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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Pibawi |
영어의미역 | Bloody Rock |
이칭/별칭 | 혈암(血巖)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병담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의 남천내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내용]
고려 후기인 1380년(우왕 6)에 왜구가 남부 지방으로 쳐들어왔는데, 그 괴수 이름이 아지발도(阿只拔都)였다. 아지발도는 18세 정도였으나, 키가 7척이 넘었고 힘이 장사였으며, 철갑으로 무장하여 화살을 맞아도 살을 뚫지 못하였다.
아지발도의 괴력은 아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지발도가 장차 개경으로 쳐들어가겠다고 호언장담하자, 고려 조정은 당황한 나머지 이성계를 왜구 토벌 대원수로 삼아 남원에 급파하였다.
이성계는 여진족의 귀화병과 고려군의 혼성부대를 편성한 뒤 변안열을 참모로 하고 퉁두란을 부원수로 하여 전주와 남원을 거쳐 인월로 향하였다. 이성계 장군은 본진을 황산에 주둔시켰다. 황산은 운봉과 동면의 중간에 우뚝 솟은 해발 695m의 고지였다. 아지발도는 고려 관군이 토벌 나온 것을 알았지만 자기의 용력만 믿고 교만을 부리다가 이성계 장군이 황산에 진을 친 다음에야 인월에 당도하였다.
인월과 황산은 가까운 거리였다. 선두를 달린 아지발도군은 말을 몰아 순식간에 황산 및 남천에 이르러 장차 산을 기어오르려 했고, 뒤에는 3천여 명의 왜구들이 들을 메우고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성계 장군은 퉁두란과 젊었을 때부터 함경도와 만주 국경 지대를 휩쓸고 다니면서 사냥도 하고 무술을 익히던 사이로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천하의 명궁이었다. 두 사람은, 아지발도의 투구를 겨냥해 한 사람이 활을 쏘아 입을 벌리면 다른 사람이 입을 맞추어 죽이기로 작전을 세웠다.
작전대로 아지발도가 다가오자 이성계 장군의 첫 번째 화살은 어김없이 아지발도의 투구에 맞았다. 투구가 벗겨지려 하자 아지발도는 당황한 나머지 벗겨지려는 투구 끈을 내리려고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화살 한 개가 벌린 입을 쾅 맞추어 목을 꿰뚫어 버렸다. 아지발도의 심장에서 내뿜은 피는 목구멍을 통해 분수처럼 뿜어져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아지발도는 중심을 잃고 말 위에서 바위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바위에 벌겋게 피가 고이면서 순식간에 냇물을 피로 물들였다. 그후로 바위를 깨면 붉은색이 나온다고 하여 사람들이 피바위[血巖]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피바위는 ‘황산대첩비지’에서 인월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천내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당시 이성계 장군이 아지발도가 이끄는 3천여 명의 왜구를 맞아 이곳에서 화살로 그의 목을 쐈는데, 이때 왜구가 흘린 피가 바위를 물들여 지금껏 붉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