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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19
한자 三陟 邑治城隍祠
영어공식명칭 Eupchi Seunghwangsa in Samcheok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건물
지역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지도보기
시대 조선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22년 - 삼척 읍치성황사 두랑산에서 갈야산 기슭으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 삼척 읍치성황사 기능 폐지
성격 서낭당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권역 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설치한 성황사.

[개설]

조선시대 삼척도호부에 설치된 성황사와 성황신은 두 가지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첫째는 고을 전체의 안녕과 기복(祈福) 등을 기원하는 장소로, 지방관이 봄과 가을에 유교 의례로 제사를 주관하던 장소로서의 측면이다. 물론 이외에도 이곳에서 지방 향리나 토착 세력이 신상(神像)을 모시고 무격(巫覡)으로 하여금 제의를 주관하게 하는 등 오금잠제와 함께 음사(淫祀)가 행해진 장소이기도 하였다.

둘째는 무사귀신을 위무하고 역병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단을 설치하였는데 여제를 지내기 사흘 전에 성황사에서 성황발고제를 지내고 여제 지냄을 알리는 역할과 함께 여단의 중앙에 성황 신위를 모심으로써 여제를 주관하는 신령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위치]

현재 갈야산(葛夜山)[178m] 기슭에 위치하여 삼척시성북동 서낭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변천]

삼척 읍치성황사는 고려 말인 1392년(공양왕 4) 전국에 성황사를 설치해야 한다는 지침에 의하여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설치된 성황사는 수차례에 걸쳐 삼척 읍성의 안과 진산인 갈야산으로 반복 이동해 오다가 1908년 전국의 읍치성황사를 폐한 이후 삼척의 성황사도 읍치성황사로서의 위상이 사라져 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성황사 주변 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유지되다가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1922년 두랑산에서 현재의 위치인 갈야산 기슭으로 이전한 이후 네 차례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전한 이후에도 옛 전통에 따라 5월 단오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등 삼척의 중심 성황사로 기능하다가 지금은 삼척시 성북동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척정월대보름제를 할 때 댓재에서 모셔온 두타산신을 굿당으로 모시기 전에 임시로 좌정시키고, 매년 음력 5월 3일에는 성황사 앞에서 오금잠제가 연행되는 신성 공간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읍치성황사를 운영하면서 단오에 오금잠을 모셔 놓고 제의를 지냈다는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다. 삼척의 오금잠은 조선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이다. 부사 정언황(丁彦璜)[1597~1672], 김효원(金孝元)[1542~1590] 등이 계속 폐하고 없앴지만 이들 부사가 물러난 이후에도 허목(許穆)[1595~1682]과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계속 보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없어지지 않고 삼척 사람들에게 계속 신봉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 삼척에 파견된 부사들이 성황당의 미신을 혁파하고 유교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목적과 함께 무당의 민폐 제거, 세금 징수라는 측면에서 없앴지만 민간에서는 계속 전승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삼척 읍치성황사는 현재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지붕은 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성황사 내부에는 현재 위치로 이전하는 과정에 적은 편액을 비롯한 그동안의 중수 내용을 적은 편액 4개가 걸려 있다. 정면에는 당산도를 내걸고, 그 앞에 성황신을 나무 위패로 모셨다. 오른쪽에는 작은 제단을 설치하여 기물 2개를 두었다. 그러나 이 기물의 의미는 알 수 없다.

[현황]

성북동 마을 제당으로 기능한 이후 매년 정월 초하루 자시와 단오 진시 경에 마을 주민들이 서낭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정월 초하루 자시에 통장 개인이 술 한 잔 올리는 정성을 드리고, 마을 전체 주민들이 동참하여 지내는 제의는 단오에만 지낸다.

단오에 삼척시의 지원과 주민들이 모은 정성으로 서낭고사를 지낸 후오금잠제보존회와 성북동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삼척시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오금잠굿을 한다. 이때 삼척시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정치인과 다른 마을 주민들도 동참한다.

[의의와 평가]

1908년 삼척 읍치성황사로서의 기능이 비록 폐지되었지만 이후 그 전통이 성북동 주민들과 삼척 오금잠제보존회를 중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였을 때 삼척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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