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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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西樓內扁額 |
영어공식명칭 | Plaque on the Jukseoru Pavilio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길 37의 죽서루에 걸려 있는 편액.
[개설]
죽서루는 삼척 관아의 객사인 진주관(眞珠館)에 딸린 누각이다. 그러나 이 죽서루를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고려명종 대 문신 김극기(金克己)가 죽서루 관련 시를 지은 것을 보면 12세기 후반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허물어진 건물을 1403년(태종 3)에 당시 부사 김효손(金孝孫)[1373~1429]이 옛 터에다 중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는 원래 정면이 5칸이었지만 나중에 좌우 1칸씩 증축하여 7칸이 되었다. 반면에 양 측면은 칸수가 다르다. 북쪽 측면은 2칸인 데 비해 남쪽 측면은 3칸이다. 그리고 죽서루의 공포는 주심포(柱心包)와 익공(翼工) 두 가지 양식으로 되어 있다.
한편 죽서루는 상층과 하층 2층으로 나눠지며, 상층과 하층의 기둥 수가 다르고 기둥 길이도 각각 다르다. 이는 높고 낮은 자연 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건물 기둥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 암반을 초석으로 활용한 경우에도 다듬지 않고 글겅이질을 하여 기둥과 초석을 밀착시켰다. 이처럼 죽서루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세워졌다.
[형태 및 구성]
과거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주위 경관을 자랑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시인·문사가 사시사철 찾아왔다. 시작(詩作)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대이던 만큼 방문객들은 예외없이 죽서루 누마루에서 즐긴 주위 풍경의 시원한 눈 맛을 시로 읊고 남겨 두었다. 이에 따라서 죽서루에는 이곳을 찾은 시인·문사들의 주옥 같은 글을 새긴 편액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1959년 9월에 삼척 지역을 엄습한 태풍 사라호로 말미암아 현판 대부분이 유실되고 지금은 28개의 편액만이 걸려 있을 뿐이다.
죽서루 편액을 글 내용별로 나누어 보면 ‘죽서루’ 및 그 별호(別號)를 새긴 편액이 5개, 시를 쓴 편액이 17개, 기문(記文)을 쓴 편액이 6개이다. 이 밖에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과 기부금방명기(寄附金芳名記)를 쓴 편액이 1개씩 있다. 비록 시를 쓴 편액은 17개이지만 그 안에는 28편의 시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 정조와 이이(李珥)[1536~1584]·이구(李龜)[1469~1526]의 시는 1992년에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1921~2006]이 쓴 글씨를 새겼고, 정철의 시는 1992년에 일죽홍태의가 쓴 글씨를 새겼다. 또 강징(姜澂)[1466~1536]의 시를 쓴 편액은 2003년에 다시 제작하여 게첩(揭帖)한 것이다.
[특징]
① ‘죽서루’ 및 그 별호를 쓴 현판
‘죽서루’를 쓴 편액이 2개이다. 그 가운데 해서체로 쓴 것은 숙종 대에 삼척부사를 지낸 이성조(李聖肇)[1662~1739]의 작품이지만 정자로 굵게 쓴 글씨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 글씨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역시 이성조의 작품이다. 글씨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대에 삼척부사를 지낸 이규헌(李奎憲)의 작품이고,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대에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許穆)[1595~1682]이 썼다고 한다.
② 시를 쓴 편액
시를 쓴 편액 17개에 들어 있는 시 28편 가운데에는 숙종과 정조가 쓴 시가 1편씩 있다. 또 삼척부사를 지낸 자 6명의 시 9편과 삼척군수를 지낸 자 1명의 시 1편이 있다. 또 강원감사를 지낸 자 2명의 시 3편도 있다. 특히 선조와 후손의 시를 함께 써 놓은 편액도 2개 있다. 그리고 시를 쓴 작가를 보면 이구와 이승휴를 제외하면 모두 조선시대 사람이다.
③ 기문을 쓴 편액
허목이 삼척부사로 있던 1662년(현종 3)에 쓴 ‘죽서루기(竹西樓記)’와 1921년에 죽서루를 중수할 때 이학규(李鶴圭)가 지은 ‘죽서루중수기(竹西樓重修記)’를 쓴 편액이 있다. 또 1947년에 죽서루를 중수할 때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중수기’와 1991년에 당시 삼척시장인 김광용(金光容)이 지은 ‘중수기’를 쓴 편액도 걸려 있다.
④ 기타 편액
1971년에 죽서루를 중건할 때 홍종범(洪鍾凡)이 지은 ‘죽서루중건상량문(竹西樓重建上樑文)’을 쓴 편액이 있다. 1947년에 죽서루를 중건할 때 기부금을 낸 인물과 회사·단체의 이름과 기부금 액수를 기록한 ‘죽서루중수기부금방명기(竹西樓重修寄附金芳名記)’를 써 놓은 편액도 있다.
[의의와 평가]
과거 죽서루를 찾은 수많은 시인과 문사들은 누각이 자리 잡고 있는 기암절벽과 멀리 또는 가까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산경, 누각 아래를 흘러가는 오십천이 만들어 놓은 응벽담(凝碧潭), 누각 주변에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정경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절경의 파노라마에 찬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특히 유람객들은 이러한 죽서루의 절경이 바다와 떨어져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