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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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歡道 |
영어공식명칭 | Seonghwan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경희 |
[정의]
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김제역과 금사역이 소속된 찰방역.
[개설]
성환도(成歡道)는 조선시대 때 금정도(金井道), 시흥도(時興道), 이인도(利仁道) 등과 함께 충청남도 지역에 설치된 4개의 찰방역(察訪驛) 중 하나이다. 본역인 성환역과 속역 11개를 관할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의 김제역과 연기면 해밀리의 금사역이 조선시대 때 성환도의 속역 11개에 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역제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역로 신설과 재편, 역 합병 등을 통하여 한양을 기점으로 하는 새로운 역로망을 형성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역제는 정비 과정을 거쳐 『경국대전(經國大典)』무렵인 성종대에 완성된 후 조선 후기까지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역참제도는 육로교통의 필수 요건이었다. 요로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역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이 깊을 것이지만 확인되는 것으로는 『고려사』의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성환도는 전통 시대에 삼남 대로로 알려진 해남 대로와 영남 대로의 분기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충청도 6개 찰방역 중 하나로 본역인 성환역과 속역을 관할하였다. 성환찰방도의 관할 구역은 성환-천안-공주-여산으로 이어지는 역로와 공주-연기, 공주-예산, 공주-온양, 천안-목천 등을 잇는 역로이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성환도역에 속한 12개 속역 중 중역(中驛)이 7개, 소역(小驛)이 5개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 『대전회통』, 『대동지지』 등 지리지 읍지에 다수의 기록이 남아 있다.
[내용]
성환도는 1462년(세조 8)에 12개의 역참을 관리하는 것으로 정해진 후 조선 후기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중심역에는 종6품의 찰방(察訪)이 있었다. 성환도의 관할 범위는 성환(成歡)-천안(天安)-공주(公州)-여산(礪山)으로 이어지는 역로로, 공주와 연기(燕岐)·예산(禮山), 천안과 목천(木川)을 잇는 역로였다. 현재 세종 지역을 관할하는 역은 소정면 대곡리의 김제역과 연기면 해밀리의 금사역이었다. 성종대 이후 일신도(日新道)와 병합하여 성환역·신은역·김제역·광정역·일신역·경천역·평천역 등은 모두 중로(中路 또는 中驛)에 속하였고, 그 밖의 역은 소로(小路 또는 小驛)에 속하였다. 이 역도는 1894년 갑오경장까지 존속하였다.
[변천]
성환도는 『경국대전』 반포 무렵 성종 대에 완성된 이래 조선 후기까지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역로망은 세조 때 정비되어 41역도[驛道: 역마(驛馬)를 바꿔 타는 곳이나 그곳을 통하는 길로서 오늘날의 도로망으로 볼 수 있다. 경기(6역도)-충청도(6역도)-전라도(6역도)-경상도(11역도)-강원도(4역도)-황해도(3역도)-평안도(2역도)-함경도(3역도)] 524역[충청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71개 속역이 소속] 체제로 편성된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충청남도 지역은 성환도, 일신도, 금정도, 시흥도, 이인도의 38역과 연기현 관내에 설치된 율봉도의 금사역을 포함하여 총 6개 역도에 39역이 편제되어 있었으나 세조 때 일신도 전체와 율봉도의 금사역이 성환도로 통폐합되면서 4개 역도에 39역으로 정비되었다. 이때 율봉도 소속이던 금사역이 성환도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교통수단 발달과 시대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쇠퇴하여 지금은 흔적만 확인할 수 있는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며 조선시대에 중요 교통 통신 기관으로 자리 잡은 성환도를 통하여 조선시대 핵심 거점의 역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세종 지역의 속역이 어떤 길의 중심이 되었는지, 어떠한 경로에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들의 생성 과정을 통해 그 지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