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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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鳥致院堤堰建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완호 |
[정의]
[역사적 배경]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읍내 일대는 조선 전기에 저지대인 곳이었다. 허만석(許晩石)이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1427년(세종 9) 무렵에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한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경과]
연기현감 허만석은 연기현 치소에서 북쪽으로 15리 되는 지점에 큰 제방[堤堰]을 설치하여 물길을 바로잡았다. 허만석은 제방을 쌓기 시작할 때 직접 나와 감독하였는데 어느날 청주 사람들이 다수 몰려와 불손한 말을 하고 걸터앉은 상을 부수자 허만석이 활시위를 당겨 청주 사람들을 쫓아냈다. 이후로 청주 사람들이 제방으로 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과]
허만석이 제방을 쌓은 후 저지대에 논 1,000여 경을 개간하여 물을 댈 수 있도록 하자 백성들은 허만석을 대대로 칭송하게 되었다. 『조치원읍지』에 따르면 이 제방은 『1872년 지방지도』 「연기현지도」에 저치제언(苧峙堤堰)으로 표기된 곳으로 보이며, 현재의 평리·상리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다. 또한 『연기읍지』 제언(堤堰) 조에는 ‘현북십오리(縣北十五里)’ 지점에 있는 모치제언(茅峙堤堰)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