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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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釜鐵道敷設工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상호 |
[정의]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세종 지역을 포함하여 건설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개설]
경부선 철도(京釜線鐵道) 부설 공사는 1901년에 착수하여 1904년 완공되었다. 경부선이 전의군, 연기군을 통과하기 때문에 경부철도부설공사에 전의 지역과 연기 지역의 많은 노동력이 수탈되었다.
조선 최초로 설치된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 경인선(京仁線)[33.2㎞]이다. 경부선 이후 1906년에 용산~신의주 간 경의선, 1910년에 평남선, 1914년에 대전~목포 간의 호남선과 서울~원산 간 경원선, 1928년에 원산~상삼봉 간 함경선, 1936년에 이리~여수 간 전라선, 1942에는 청량리~경주 간 중앙선이 각각 개통되었다.
경부선 철도 부설은 일본 자본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하여 서울 영등포에서 1901년 8월 20일, 부산 초량에서 1901년 9월 21일 기공되어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다.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영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현 서울역) 광장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경부철도부설 당시 조치원은 전형적인 한국 농촌 모습으로 연기현과 청주의 경계 지역이었다. 작은 장시에 지나지 않던 조치원에 역동적 변화가 시작된 것은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부터이다. 전의와 연기 두 지역의 중심지가 경부선역이 설치되는 조치원으로 이동하고, 열차증기기관의 급수 기지가 된 조치원이 교통 중심지로서 근대적인 도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1880년대 세계 자본주의는 독점 자본주의 단계로 접어들며, 군사력을 배경으로 국가주의(國家主義)를 앞세워 제국주의(帝國主義)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열강들이 동아시아 이권을 둘러싸고 각축(角逐)한 끝에 우리나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일본이 조선 철도 부설 독점권을 차지하였다. 영국·미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철도 부설은 증기기관 개량과 도로·운하 발전으로 근대화 및 산업 혁명에 크게 이바지한 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경제 수탈을 위한 경제적 목적과 만주 침략을 위한 군사적 교두보 목적으로 철도 부설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해관(海關) 관리권, 전기 사업권, 포경 어로권 등을 탈취하는 한편 일본 정부의 후원 아래 우선 경부철도주식회사(京釜鐵道株式會社) 창립을 추진하여 백방으로 한국 정부와 교섭하였다. 1898년 9월 8일 한·일 양국의 공동 경영을 전제로 한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하여 숙원을 달성하게 되었다.
[경과]
경부선의 철도부설공사는 조치원·대구·초량에 건설사무소를 두고 추진되었다. 속성 공사로 착수하였으나 성현(省峴)~부강(芙江) 간 120리는 착수하지 못하였다. 성현~부강 구간은 1903년 7월과 12월 사이에 실측을 마쳤으나 속성 공사를 시행하려면 개측(改測)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개측 결과 남부 성현~영등포 간 77리 32쇄(심천정거장 남단) 지점에서 남북 궤도가 연결 되어 경부철도 속성 공사가 준공되었다.
경부선 속성공사에 더하여 터널, 교량 등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경부선은 1903년 12월 27일 초량~영등포 간 여객을 취급한 데 이어 1905년 1월 1일에는 전 노선을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경부선이 개통되자 1905년 9월 11일에는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을 매체로 경부 철도와 일본 철도를 연결하는 일괄 운항 역시 시작되었다. 또한 11월 10일에는 경부 철도와 군용 철도인 경의선[서울 용산~신의주 간] 연락 운행이 시작되었고, 11월 11일에는 군용 철도 마산포선이 개통되어 영업을 개시함으로써 군용 철도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사설 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주식회사가 충북선 조치원~청주 간 노선을 1921년에 개업하여 조치원을 철도교통 요충지로 만들었다. 원래는 충북경편철도주식회사에서 제천~충주~청주~부강 노선을 부설하려 하였는데 조선중앙철도와 충남 측에서 청주~조치원~공주 노선을 들고 나오자 총독부의 중재 하에 충남 쪽의 의견대로 결정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충주까지 연장 운행하였다.
1931년 일본제국주의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된 뒤에는 수송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일본은 그동안의 시설 보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1936년 경부선 복선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전~영등포 간 복선 공사는 1939년, 부산~삼랑진~대전 간 복선은 1940년 공사에 각각 착수하여 전쟁 중인 1944년 10월 준공되었다.
광복 이후 충북선은 국유화되었고, 1958년 중앙선과 연결되면서 강원도 지역과 경부선 지역을 오가는 천연자원과 화물의 경유 루트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결과]
경부선부설공사가 완료되면서 조치원은 화차의 급수기지가 되었고,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토의 공간 거리가 크게 단축되어 외관상으로는 단숨에 충청 제일의 신시가지가 구획되었다.
1926년 조치원~청주 간 선로가 개통되고 점차 충북선이 구간을 늘이면서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토 발전에 발전축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세종 지역은 경부선을 비롯한 고속철도 오송역을 매개로 행정·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세종~보령 간 철도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에서 각종 이권을 획득하는 제국주의 이권 쟁탈 과정에서 일본이 편승하여 벌인 침략적 행위가 경부철도부설공사였다. 공사의 근본 목적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수탈 정책을 뒷받침하고, 경부선을 경의선과 함께 대륙 진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광복 후 경부선은 혼란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격동기를 겪었다. 뒤이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교통·유통의 대동맥 구실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선은 곳곳의 도시에서 간선 및 지선 철도의 형태로 주요 산업 단지와 관광단지를 연결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경부선 부설은 일제가 우리나라 침략 정책을 수행하는 데 구체적인 디딤돌로 작용하였음을 기억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