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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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松里 |
영어공식명칭 | Nosongri |
이칭/별칭 | 놀뫼,노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정보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를 심어 밖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해서 소나무 연못을 의미하는 송담이라고도 불렀다.
노리미마을은 마을 뒷산의 모양이 노루와 닮아 노루미로 불리다가 노리미가 되었다. 강당마을은 예전에 서당이 있어서 부르던 명칭이며, 움골마을은 처음에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동이면(東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연기군 동이면의 신대리·노산리·상송리·웅동리와 송담리 일부 및 송리 일부를 병합하고 노산리·송담리의 앞글자를 따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노송리(老松里)가 되었다.
2012년 7월에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노송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노송리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구릉성 산지와 평지가 넓은 편이다. 아미산(峨嵋山)[139.7m] 아래에 마을이 집중적으로 발달하였다.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북서를 지나 미호천으로 유입된다. 소하천 주변에는 논이 분포하며, 지대가 약간 높은 곳은 밭이다.
[현황]
연동면의 북동 지역에 있는 노송리의 면적은 1.9㎢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148가구에 총 314명이다.
하천 주변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지대가 높은 곳은 밭농사와 과수 재배가 행하여진다. 마을 남동에는 철구조물업체로 HKS가 입지하여 있다. 교통은 오송읍·강내면·부강면 등을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노송리는 경주김씨, 결성장씨, 성산배씨, 광산김씨가 대대로 살면서 집성촌을 형성한 곳이다. 마을에는 효부이자 열녀인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 정려가 세워져 있다. 효로 시부모를 섬기고 예의를 갖춰 남편을 대한 효열부이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배상철이 태어난 곳으로, 배상철은 독립운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사람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