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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35
한자 順興安氏
영어공식명칭 Sunheung An Clan|Sunheung Ans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94년(성종 25) - 안창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63년(명종 18) - 안창 사망
입향 시기/일시 1500년대 - 안창 입향 추정
입향 시기/일시 1500년대 - 안윤희 입향 추정
본관 순흥안씨 본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입향지 순흥안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 지도보기|연서면 와촌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순흥안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 지도보기|연서면 와촌리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연동 합호서원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1길 262-6[합강리 104]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순흥안씨 세장비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1길 262-6[합강리 104]지도보기
성씨 시조 안자미
입향 시조 안창|안윤희

[정의]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창과 안윤희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는 순흥안씨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연동면 합강리에 입향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유력 성씨이다.

[연원]

순흥안씨의 시조는 안자미이다.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시조 이전의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는 알 수 없으나 그 후 순흥현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순흥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순흥은 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하여 있다.

안자미의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영화(安永和)는 각각 추밀공파(樞密公派)·별장공파(別將公派)·교서공파(校書公派)의 파조가 된다. 안자미의 증손인 주자학의 태두 안향(安珦)[1243~1306] 이후 가문이 크게 번창하여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641명이나 되었다. 근현대 유명 인물로 독립운동가 안창호(安昌鎬)[1878~1938], 안중근(安重根)[1879~1910] 등이 있다.

[입향 경위]

연동면 와촌리 순흥안씨는 안종신(安從信)을 파조로 하는 참판공파(參判公派)로 입향조는 안창(安昌)[1494~1563]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문의현령(文義縣令)을 지냈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받았다. 500여 년 전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배양리에서 옮겨 와 와촌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당시 순흥안씨는 사화를 피하여 지방 곳곳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문의현령을 지낸 안창이 와촌리와 인연이 있어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연동면 합강리 순흥안씨는 안조동(安祖同)을 파조로 하는 양공공파(良恭公派)이다. 입향조 안윤희(安允禧)는 안조동의 9세손으로,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다. 당시 순흥안씨 세거지인 청원군 현도면에 살다가 합강리로 오게 되었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황]

1988년 순흥안씨연동면 합강리에 55가구, 연서면 와촌리에 16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순흥안씨는 1985년에는 352가구 1,450명이며, 2000년에는 343가구 1,104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순흥안씨는 2,501명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합강리가 편입되면서 합강리 순흥안씨는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연동면에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2호인 연동 합호서원이 있다. 안향의 위패와 영정을 기리기 위하여 1716년에 창건되어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9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음력 3월 3일 향사(享祀)[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를 지내고 있다.

연동 합호서원 옆에는 1990년 순흥안씨 대종계에서 순흥안씨세장비(順興安氏世庄碑)를 세워 순흥안씨합강리에서 500년 넘게 살아온 것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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